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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면와(111221) 크게보기
귀면와(111221)
문양구분
(2D)
문양분류
인물문/귀신문
국적/시대
한국/통일신라
원천유물명
귀면와
문양설명
건축이나 고분||CHR(44)|| 주술도구에 벽사와 수호의미로 새겨 넣은 귀신이나 도깨비의 문양이다. 그 기원은 중국 주대(周代)의 청동기에 시문된 도철문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로 얼굴 부분을 표현했으나 몸의 형상을 부분적||CHR(44)|| 전체적으로 드러낸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와전이나 고분벽화||CHR(44)|| 포수(鋪首) 및 각종 공예품 등에 표현하였다. 귀신문은 불교 미술뿐만 아니라 생활 문양으로도 자주 나타나며||CHR(44)|| 삼국시대의 기와에서부터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고대에는 선귀(조상신)나 각종 신들이 신봉의 대상이 되었다.「회남자(淮南子)」권 13「범논훈(氾論訓)」에서는 ||CHR(39)||화제(火帝)는 불의 덕으로 왕이 되었다가 죽어서 총신(寵神)이 되었고 우(禹)는 천하를 위하여 수고했다가 죽어서 곡신(穀神)이 되었고 예는 천하의 해를 제거하고 죽어서 종포(宗布)가 되었다. 이것이 귀신이 생긴 까닭이다||CHR(39)||라고 기록하고 있다. 조상신에 대한 이야기는 신라의 호국설화나 문무왕의 호국대룡(護國大龍) 설화와 같은 한국의 고대설화에서도 나타나므로 이를 통해 선귀를 숭앙하였던 옛 풍속을 알 수 있다. 이밖에도 고대에 궁중에서 마귀와 사신을 반기위해 베풀어진 나례(儺禮) 풍습이나 기두(네 개의 눈이 달린 방상씨(方相氏) 가면)를 쓰고 귀신을 유희||CHR(44)|| 중국의 개국설화에 등장하는 벽사신인 치우의 형상을 그려 붙이던 풍습 등에서 귀면무늬의 초기 형태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삼국유사(三國遺事)」권 1의「도화녀(桃花女)와 비형랑(鼻荊郞)」설화에 기반을 두고 비형에 관한 글을 지어서 집에 붙여 귀신을 물리쳤다는 풍속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CHR(44)|| 부인을 도둑맞고 춤을 추었다는 내용의「처용랑(處容郞)」에 등장하는 처용의 모습을 묘사한 대목을 통해 옛 사람들이 생각한 도깨비의 모습을 알 수 있다. 귀면의 상징적 의미는 신이 갖고 있는 힘으로 천재지변과 전쟁||CHR(44)|| 전염병||CHR(44)|| 기근 등의 재앙을 물리치고자 하는 토속신앙에 기원을 두고 있다. 벽사신앙은 고대인들이 추구했던 장생사상(長生思想)과 기복신앙의 필수적인 요소였으며||CHR(44)|| 귀면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 된다. 주로 고분||CHR(44)|| 궁궐이나 사원 등의 건축물에 쓰인 기와||CHR(44)|| 문고리||CHR(44)|| 주술적(呪術的)인 제기(祭器)의 장식에서 상징적인 의미의 무늬로 전시대에 걸쳐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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