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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근정문 계단(78880)
문양설명
경복궁(景福宮)은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태조 3년(1394)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세워졌다. 북으로 북악산에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가 펼쳐져, 수도 한양의 중심이었다. 경복궁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고종 4년(1867)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중건되었다.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의 정무시설, 왕족들의 생활공간, 휴식을 위한 후원이 위치하고 있다. 1895년 궁궐 안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왕이 러시아공관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주인을 잃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경복궁의 건물을 헐고, 근정전 앞에 총독부 청사를 지어 경복궁은 옛 모습을 거의 잃게 되었다.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사업이 추진되어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광화문을 복원하였으며, 왕과 왕비의 침전, 동궁, 건청궁, 태원전 등이 원래 모습을 되찾고 있다. 근정문(勤政門)은 경복궁의 중심 건물인 근정전(勤政殿)의 남문으로 좌우에 복도건물인 행각이 둘러싸고 있다. 조선 태조 4년(1395) 경복궁을 세울 때 함께 지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다시 세우면서 같이 지은 것이다. 근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건물로 우진각지붕을 갖추고 있다. 현존하는 조선시대 왕궁 정전의 남문 중 하나 밖에 없는 2층 건물로, 궁궐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경복궁 근정문 계단으로 정면에 연꽃과 함께 덩굴을 조각하였다. 연꽃은 활짝 핀 모습으로 가운데에 배치하였고 덩굴은 좌우대칭으로 둥글게 말려서 뻗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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