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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도별문양

목장도(7553) 목장도(7553)
목장도(7553)
문양설명
장도는 칼집을 갖춘 작은 칼로서 휴대용 장신구로인데 신라 시대부터 남녀가 공용으로 찼으며 조선시대에는 노리개로 유행하였다. 남자들은 주머니, 담배쌈지와 더불어 주머니에 착용했으며, 여자는 치마 속 허리띠에 차거나 노리개의 주체로 이용하였는데 호신용으로도 사용되었다. 장도는 칼자루와 칼날, 칼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칼자루와 집은 먹감나무, 대추나무, 쇠뼈, 대모, 산호, 금, 은, 옥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든다. 나무로 만들 경우는 칼자루와 집이 맞물리는 곳에 쇠붙이 장식 띠를 두른다. 이것은 목장도로 국화와 매화를 새긴 쇠붙이 장식 띠를 둘렀다. 국화는 중국의 시인 도연명이 자신의 지조를 굽히지 않고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소나무와 국화를 벗하면서 살았다는 일화로 인해 군자의 맑은 아취와 높은 절개를 지닌 꽃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은군자(隱君子: 속세를 떠나 숨어 사는 군자), 은일화(隱逸花: 속세를 떠나 숨어있는 꽃)라는 별명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또한 늦은 서리를 견디면서 그 청초한 모습을 잃지 않는 국화의 생태는 길상 또는 상서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영초(齡草: 나이든 식물), 옹초(翁草: 나이든 식물), 천대견초(千代見草: 천대에 걸쳐서 볼 수 있는 식물)라고도 하여 장수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선비들이 사용하는 문방도구에서 사용된 국화문은 대부분 높은 절개·절조를 상징한다. 매화는 고결한 선비나 정절의 여인을 상징한다. 이른 봄에 홀로 피어 봄의 소식을 전하고 맑은 향기와 우아한 운취가 있어 순결과 절개의 상징으로 널리 애호되었다. 매화의 다른 이름인 보춘화(報春花)는 겨울이 끝나고 봄이 문턱에 올 즈음에 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봄·겨울 홀로 핀 늙은 매화의 고고한 자태를 표현한 그림은 군자의 지조와 절개로 비유되고 있다. 또 겨울이 되어 잎이 지고 나면 죽은 것처럼 보이나 다음 해 다시 꽃이 피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 장수의 상징물로도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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