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 전통문양 용도별문양
청화백자접시(7528) 청화백자접시(7528)
청화백자접시(7528)
문양설명
과일이나 반찬을 담는데 쓰는 백자 접시이다. 조선백자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이나 15세기경부터 푸른 코발트 안료로 문양을 나타낸 청화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7세기경부터는 주류를 이룬다. 이 접시의 내면에는 괴석과 국화, 난초, 나비를 청화 안료로 그리고, 접시의 가장자리와 굽 부분에 청화 안료로 선을 둘렀다. 바위는 오랜 세월을 두고 변치 않기 때문에 장수의 의미를 나타내는 사물이다. 괴석도(怪石圖)는 여러 가지 길상을 나타내는 동물이나 식물을 곁들여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기암(奇巖)이나 괴석, 수석(壽石) 옆에 불로초(지초, 영지버섯)나 복숭아꽃, 혹은 수선화가 무더기로 핀 경치를 볼 수 있다. 바위나 돌은 영원불멸의 상징이며, 또한 비바람을 가지지 않고 말없이 의연한 자태는 군자의 풍모를 엿볼 수 있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국화는 동진(東晉)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자신의 지조를 굽히지 않고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소나무와 국화를 벗하면서 살았다는 일화로 인해 군자의 맑은 아취와 높은 절개를 지닌 꽃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은군자(隱君子: 속세를 떠나 숨어 사는 군자), 은일화(隱逸花: 속세를 떠나 숨어있는 꽃)라는 별명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또한 늦은 서리를 견디면서 그 청초한 모습을 잃지 않는 국화의 생태는 길상 또는 상서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영초(齡草: 나이든 식물), 옹초(翁草: 나이든 식물), 천대견초(千代見草: 천대에 걸쳐서 볼 수 있는 식물)라고도 하여 장수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난초꽃이 정신적인 완성이나 순결을 상징하는 것은 동양과 서양이 같다. 특히 난초는 동양에서 사군자에 속해 군자의 기상에 비유되었다. 한편 『화경(花經)』에서는 “난초의 다른 한 종류로 그 잎이 난에 비해 조금 넓고 부드러우며, 꽃이 자백색(紫白色)인 것을 손(蓀)이라 한다”라 하였다. 따라서 우리 선조들은 난초 ‘손(蓀)’과 자손을 말하는 ‘손(孫)’은 같은 소리가 난다고 하여 난초를 자손번창의 상징으로도 여겨왔다. 또 공자가(孔子家)에서 전하는 말에 “착한 사람과 사귀는 것은 마치 난초를 가꾸고 있는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 오래 있으면 그 향기를 맡지 못하나 곧 그것과 동화된다”라고 하였다. 이 말의 뜻은 군자의 교제는 바로 난초를 가꾸는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비유한 것으로 예부터 사람들은 자신을 알아주는 좋은 친구를 난우(蘭友)라 하였다. 나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자유연애와 아름다운 것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특히 동양에서는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에서 연유하여 남녀 화합의 상징으로 여겨지는데,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화궁(花宮) 속으로 날아다니며 달콤한 꿀을 빨아먹으면서 즐거움을 만끽한 데서 나비는 즐거움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꽃에 날아드는 나비의 모습은 부부간의 화합과 자손의 번성의 염원하는 여인의 마음을 나타낸다.
공공누리 제 1유형 마크 - 출처 표시

한국문화정보원이 창작한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예) 본 저작물은 "문화포털" 에서 서비스 되는 전통문양을 활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