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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상감국화문사이호(7455) 청자상감국화문사이호(7455)
청자상감국화문사이호(7455)
문양설명
청자는 11세기 말에서 12세기 사이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고려청자에 본격적으로 문양이 나타나기 시작한 때는 11세기경에 이르러서이다. 문양의 종류는 중국에서 전래된 국화덩굴문과 연판문 등을 고려적인 모습으로 변화시킨 것으로 음양각기법이 이용되었다. 12세기에 접어들면서 비색(翡色) 청자의 완성과 함께 다양한 문양이 다채롭게 청자를 장식한다. 또 고려청자의 장식 기법 가운데 가장 독창적인 것이 상감기법인데, 이 기법은 조각칼로 나타내고자 하는 무늬를 음각한 후 그 홈에 붉은 흙이나 흰 흙을 감입한 것으로 문양의 표현이 사실적인 것도 있지만 도안적인 성격이 강하다. 고려 중기 이후 청자의 중요한 장르로 등장한 상감청자에는 예전에 볼 수 없는 새로운 문양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문양으로는 연덩굴문, 국덩굴문, 국화문이나 모란문, 역상감의 보상덩굴문, 포도동자문 등이 많이 보인다. 이것은 아가리가 좁고 어깨 부분은 크며 밑이 홀쭉하게 생긴 매병형태의 상감청자 항아리이다. 몸체에 국화무늬를 상감하여 배치하였는데, 꽃은 백상감으로 잎과 줄기는 흑상감으로 표현하였다. 어깨에는 여의두문 모양의 고리 3개를 같은 간격으로 배치하였고, 아랫부분에는 번개문을 백상감하였다. 국화는 중국의 시인 도연명이 자신의 지조를 굽히지 않고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소나무와 국화를 벗하면서 살았다는 일화로 인해 군자의 맑은 아취와 높은 절개를 지닌 꽃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은군자(隱君子: 속세를 떠나 숨어 사는 군자), 은일화(隱逸花: 속세를 떠나 숨어있는 꽃)라는 별명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또한 늦은 서리를 견디면서 그 청초한 모습을 잃지 않는 국화의 생태는 길상 또는 상서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영초(齡草: 나이든 식물), 옹초(翁草: 나이든 식물), 천대견초(千代見草: 천대에 걸쳐서 볼 수 있는 식물)라고도 하여 장수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선비들이 사용하는 문방도구에서 사용된 국화문은 대부분 높은 절개·절조를 상징한다. 번개문은 지그재그 모양 또는 갈 지(之)자 모양의 무늬를 가리키는데, 이는 곧 번개를 상징하는 무늬이다. 번개는 농경사회에서 가뭄에 비를 몰고 오는 길조로 여긴다. 또 번개문은 연속되는 무늬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연속되어 끊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최대의 길상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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