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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자인화문내섬명대접(7442) 분청자인화문내섬명대접(7442)
분청자인화문내섬명대접(7442)
문양설명
분청사기 대접이다. 대접이란 국이나 숭늉 따위를 담는 데 쓰는 위가 넓고 운두가 낮은 모양의 그릇을 말한다. 사발보다 더 크며 국이나 국수 등을 담는 용기를 대접이라고 한다. 외면에는 백상감과 귀얄기법을 동시에 사용하여 여러 겹의 선문을 위, 아래로 두고 그 사이를 구부러진 사선으로 꽉 채우고 있다. 내면의 경우 삿자리문과 4줄의 선을 번갈아 백상감하여 시문하였다. 내면 바닥에는 국화와 그 둘레를 감싸는 6개의 ‘내섬(內贍)’의 명문을 인화기법으로 시문하였다. ‘내섬(內贍)’이라는 명문은 조선시대 술과 안주, 왜인(倭人)·여진인(女眞人)에게 주는 음식물과 직포(織布) 등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인 내섬시(內贍寺)를 가리킨다. 삿자리는 갈대로 만든 자리인데, 삿자리무늬는 비스듬히 줄을 이어 짧은 점선이 연결 집합된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점에 의한 추상문양은 신석기 시대부터 나타나며,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의 토기에서 나타난다. 만들 때 안으로는 자갈돌 같은 받침을 대고 밖으로부터 노끈을 감거나 노끈무늬·격자무늬를 새긴 방망이로 두드려 표면에 노끈무늬·격자무늬를 나타나게 한 다음 같은 간격의 평행선을 둘러 삿자리 비슷한 삿자리무늬를 장식하였는데 이렇게 만든 토기를 종래 승석문(繩蓆文) 혹은 삿무늬 토기라고 불렀다. 이러한 삿자리무늬는 고려상감청자에서도 나타나며, 분청사기에서는 인화문 기법으로 발전되었다. 분청사기의 무수한 점에 깔린 사상은 『주역(周易)』의「태극론(太極論)」에서 다음과 같이 찾을 수 있다. “점은 찍어가다 보면 결국 그 점은 되돌아오게 되고, 태어나면 사라지고 사라지면 또 태어나는 그러한 것이 삼라만상이고, 점이 모이면 산이 되고, 물이 되고, 또 흩어지면 공기가 되기도 한다.” 분청사기의 삿자리무늬에는 옛사람들의 우주관이 담겨있는 것이다. 삿자리무늬는 단순 소박한 모양과 장식으로 이루어진 분청사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국화는 동진(東晉)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자신의 지조를 굽히지 않고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소나무와 국화를 벗하면서 살았다는 일화로 인해 군자의 맑은 아취와 높은 절개를 지닌 꽃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은군자(隱君子: 속세를 떠나 숨어 사는 군자), 은일화(隱逸花: 속세를 떠나 숨어있는 꽃)라는 별명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또한 늦은 서리를 견디면서 그 청초한 모습을 잃지 않는 국화의 생태는 길상 또는 상서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영초(齡草: 나이든 식물), 옹초(翁草: 나이든 식물), 천대견초(千代見草: 천대에 걸쳐서 볼 수 있는 식물)라고도 하여 장수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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