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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자상감모란문대접(7432) 분청자상감모란문대접(7432)
분청자상감모란문대접(7432)
문양설명
분청사기 대접으로 폭이 넓고 높이가 낮아 납작한 느낌이 든다. 분청사기는 회색 또는 회흑색의 태토위에 백토를 입히는 방법과 문양에 따라서 상감·인화·조화·박지·철화·귀얄·덤벙의 7가지로 분류한다. 이 대접은 상감과 인화기법을 사용하였다. 상감기법은 고려 상감청자의 상감기법을 이어받은 것으로 선으로 무늬를 나타낸 선상감과 넓게 무늬를 새긴 면상감이 있으며, 분청자에서는 면상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품이 많다. 인화는 일정한 무늬의 도장을 찍고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에 백토를 넣는 것으로 넓은 의미에서 상감기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대접의 내면 바닥에는 중앙부에 동심원문을 돌리고 인화기법으로 국화문을 장식했다. 외측면 상단에는 백상감으로 간략한 당초문대 돌리고 몸체에는 3곳에 같은 간격으로 모란문을 시원스럽게 면상감했다. 동심원문은 순환·윤회와 다산 그리고 장수를 상징한다. 예로부터 둥근 것은 하늘을 상징하며, 원은 하늘의 상징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모든 것에서 원 모양을 찾아냈다. 하늘·태양·달뿐 아니라 산·고개·강·길·알 등 자연의 원과 우물·구슬·그릇·거울 등 인위적인 원을 형상화하여 사용하였다. 특히 동심원은 나선형의 외향성과 원심력을 동시에 갖는다. 완벽한 원이 한정된 구심력을 갖는 것과 달이 동심원은 발전과 전진을 상징한다. 국화는 동진(東晉)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자신의 지조를 굽히지 않고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소나무와 국화를 벗하면서 살았다는 일화로 인해 군자의 맑은 아취와 높은 절개를 지닌 꽃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은군자(隱君子: 속세를 떠나 숨어 사는 군자), 은일화(隱逸花: 속세를 떠나 숨어있는 꽃)라는 별명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또한 늦은 서리를 견디면서 그 청초한 모습을 잃지 않는 국화의 생태는 길상 또는 상서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영초(齡草: 나이든 식물), 옹초(翁草: 나이든 식물), 천대견초(千代見草: 천대에 걸쳐서 볼 수 있는 식물)라고도 하여 장수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덩굴은 한자 표기로 당초(唐草)라 표기하는데, 당초는 ‘당(唐)나라 풍의 덩굴무늬’를 가리킨다. 당초라고 하는 용어는 원래 겨우살이덩굴(인동초)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인동초(忍冬草)는 한국을 비롯한 중국 등지의 산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겨우살이 덩굴식물이다. 이 덩굴은 겨울을 견뎌낼 뿐만 아니라 덩굴을 이루면서 끊임없이 뻗어나가기 때문에 장수와 대(代)를 이음을 상징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도자기에는 청화(靑畵) 또는 철화(鐵畵), 진사(辰砂), 상감(象嵌) 등 시문기법으로 묘사한 회화풍의 덩굴문이 성행되어 소박한 민화적 장식 의장 문양의 성격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덩굴문은 그 상징성보다는 대량생산에 적합하고 회화적인 구성으로서의 발전가능성으로 분청사기에서 가장 많이 시문되었다. 모란은 부귀(富貴)의 상징으로 많이 쓰이는데, 꽃 중의 왕이라 할 만큼 탐스러운 모란은 신라 선덕여왕 때 당나라로부터 전해졌다. 모란문은 특히 다른 문양과 복합되어 회화적 느낌을 풍기는 표현이 많다. 모란무늬는 조선시대에 민화를 위시한 여타의 민속 공예에서 부귀를 간절히 바라는 기복적 표현으로 자주 이용되었다. 모란문은 분청사기에서 주된 소재로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 사실적인 문양에서 추상적인 문양까지 다양한 변형을 구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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