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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상감모란문잔(7431) 청자상감모란문잔(7431)
청자상감모란문잔(7431)
문양설명
청자는 11세기 말에서 12세기 사이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고려 청자에 본격적으로 문양이 나타나기 시작한 때는 11세기경에 이르러서이다. 문양의 종류는 중국에서 전래된 국화덩굴문과 연판문 등을 고려적인 모습으로 변화시킨 것으로 음양각기법이 이용되었다. 12세기에 접어들면서 비색(翡色) 청자의 완성과 함께 다양한 문양이 다채롭게 청자를 장식한다. 또 고려 청자의 장식 기법 가운데 가장 독창적인 것이 상감기법인데, 이 기법은 조각칼로 나타내고자 하는 무늬를 음각한 후 그 홈에 붉은 흙이나 흰 흙을 감입한 것으로 문양의 표현이 사실적인 것도 있지만 도안적인 성격이 강하다. 고려 중기 이후 청자의 중요한 장르로 등장한 상감청자에는 예전에 볼 수 없는 새로운 문양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문양으로는 연덩굴문, 국덩굴문, 국화문이나 모란문, 역상감의 보상덩굴문, 포도동자문 등이 많이 보인다. 이것은 고려시대의 청자 원통형의 잔이다. 잔의 외측면 상단에는 번개문이 백상감되어 있고, 몸체 4곳에 같은 간격으로 모란이 절지문(折枝紋) 형태로 장식했는데, 모란꽃은 백상감으로 잎과 줄기는 흑상감으로 변화를 주었다. 번개문은 지그재그 모양 또는 갈 지(之)자 모양의 무늬를 가리키는데, 이는 곧 번개를 상징하는 무늬이다. 번개는 농경사회에서 가뭄에 비를 몰고 오는 길조로 여긴다. 또 번개문은 연속되는 무늬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연속되어 끊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최대의 길상을 상징한다. 모란은 부귀(富貴)의 상징으로 많이 쓰이는데, 꽃 중의 왕이라 할 만큼 탐스러운 모란은 신라 선덕여왕 때 당나라로부터 전해졌다. 모란문은 특히 다른 문양과 복합되어 회화적 느낌을 풍기는 표현이 많다. 모란무늬는 조선시대에 민화를 위시한 여타의 민속 공예에서 부귀를 간절히 바라는 기복적 표현으로 자주 이용되었다. 고려 도자기에는 초기에는 송(宋)·원(元) 도자기의 모란문과 같은 양상으로 회화적인 것이 많이 나타나지만 차츰 잎과 줄기가 함께 표현되는 절지화(折枝花)와 화분에 담긴 형태로 표현되는 화분화(花盆花) 등 관념적인 문양이 많이 나타난다. 이 유병에서도 절지화의 형태로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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