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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인화문사리합(7409) 분청사기인화문사리합(7409)
분청사기인화문사리합(7409)
문양설명
일반적으로 구슬이음문은 태양을 상징하거나 불교의 보배(佛珠) 혹은 세계와 생명을 상징한다. 연판문은 연꽃의 꽃잎을 펼쳐 놓은 모양을 도안화시켜 연속무늬를 구성한 것을 말한다. 이러한 형태는 주로 도자기의 어깨부분이나 굽 혹은 저부의 둘레에 사용되었는데 이는 연꽃이 지닌 특별한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즉 도자기 등 그릇의 둘레에 연판문양이 들어감으로써 그 물건의 비범성과 청정함을 나타내어 일반의 비속한 존재와 구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연판문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삼국 시대에 불교미술이 시작되고부터라고 할 수 있으며, 문양화된 것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서다. 범종을 비롯한 각종 불구류(佛具類)와 사리장엄구, 향로, 동경 등에서 다양한 연판의 양식이 나타나게 되었고, 그 형식은 고려시대에 와서 단조로운 선으로 표현되어 더욱 간결해진다. 빗방울문(雨點文)은 마치 눈·비가 내리는 형상에 붙여진 명칭으로, 비스듬히 줄을 이어 짧은 점선이 연결 집합된 상태의 무늬를 말한다. 선사시대 토기에서 비롯되는 원시문양의 일종으로, 빗방울문이 시문된 토기는 서기전 300년대에 우랄,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빗방울문은 고려 상감청자에서 나타나며, 분청사기 인화문 기법으로 발전되었다. 분청사기의 무수한 점에 깔린 사상은 주역의 「태극론」에서 다음과 같이 찾을 수 있다. “점은 찍어가다 보면 결국 그 점은 되돌아오게 되고, 태어나면 사라지고 사라지면 또 태어나는 그러한 것이 삼라만상이고, 점이 모이면 산이 되고, 물이 되고, 또 흩어지면 공기가 되기도 한다.” 분청사기의 빗방울문에는 우주관이 담겨있는 것이다. 번개문은 지그재그 모양 또는 갈 지(之)자 모양의 무늬를 가리키는데, 이는 곧 번개를 상징하는 무늬이다. 번개는 농경사회에서 가뭄에 비를 몰고 오는 길조로 여긴다. 또 번개문은 연속되는 무늬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연속되어 끊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최대의 길상을 상징한다.
분청사기는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이다. 분청사기는 청자와 같이 회색 또는 회흑색의 태토 위에 백토로 표면을 바르고 그 위에 회청색의 유약을 입혀 구워낸 사기이다. 분청사기가 번조된 시기는 대략 14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해당되며 조선전기 도자기의 주류를 이루었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우리 도공들의 납치와 요지의 파괴로 분청사기는 자취를 감추었다. 분청사기는 백토를 입히고 문양을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 상감(象嵌), 인화(印花), 조화(彫花), 박지(剝地), 철화(鐵畵) 귀얄, 덤벙기법으로 나누어진다. 특히 분청 사기장들은 일일이 새기는 상감법 대신에 문양이 새겨진 도장을 꾹꾹 눌러 손쉽게 상감의 효과를 거두는 인화문을 즐겨 사용하였는데 이 대접에도 인화기법으로 장식하였다. 이 사리합은 뚜껑과 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뚜껑 윗면 중앙에는 연꽃문을 둘러싼 구슬이음무늬가 있고, 바깥쪽으로는 흑백상감의 연꽃문이 배치되어 있다. 연꽃문 외곽으로는 빗방울무늬가 나타나고 그 사이에 흑백상감의 4개의 원이 배치되어 있다. 뚜껑의 측면에는 구슬이음문이 인화되었다. 합과 뚜껑이 만나는 부분에는 번개무늬를 백상감하여 돌렸다. 그 아래로 연꽃무늬를 인화하여 배치하고 다시 그 아래로 연판문을 흑백상감하여 돌렸다. 연꽃문은 고대 인도에서 전래되어 불교 미술의 상징적 도안으로 사용되어 왔다. 수많은 꽃 중에서 유독 연꽃만이 꽃과 열매가 동시에 피어나는 독특한 특성을 지녔는데, 이러한 연유에서 연꽃은 고대로부터 생성과 관련되는 의미를 부여받았다. 이와 같은 생명 창조의 상징은 불교에서는 부처의 지혜를 믿는 사람 모두 사후에 연꽃 속에서 다시 태어나 서방정토에서 왕생한다는 연화화생 신앙으로 표출되었다. 또 불교에서는 연꽃을 청결, 순결의 상징물로 여겼는데 그것은 늪이나 연못에서 자라지만 더러운 연못에 물들지 않는 속성에 기인하고 있다. 연꽃의 이런 속성을 불교의 교리와 연결시켜 초탈(超脫), 보리(菩提), 정화(淨化) 등 관념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한편 연꽃은 민간 신앙에서는 다산(多産)의 의미로 상징되었다. 그 이유는 연꽃의 강한 생명력 때문으로 중국의 민간 신앙 가운데 ‘연생귀자(連生貴子)’라는 말이 있는데 그 의미는 귀한 아들을 연이어 많이 낳기를 축원하는 것이다. 연꽃의 ‘연(連)’과 연생의 ‘연(連)’이 같은 소리를 낸다고 하여 서로 상통하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연꽃의 독특한 생장 특성을 이용해 다산의 의미로 승화시킨 것이다. 연꽃은 불교만의 전용 소재는 아니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 이전부터 연꽃은 도교와 유교에서 군자(君子)의 상징으로 비유되었다. 송나라 유학자 주돈이는 자신이 노래한 「애련설(愛蓮說)」에서 “꽃 가운데 국화는 속세를 떠난 군자요, 모란은 부귀한 자이며, 연꽃은 군자(君子)라 생각한다”고 찬양하였다. 이와 같이 진흙탕에서도 물들지 않고 청아하게 피어나는 연꽃을 유교에서는 덕망 높은 군자를 상징하는 꽃으로 여겼던 것이다. 구슬이음문은 일종의 테두리 문양으로 크고 작은 구슬형태의 원무늬가 연속한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구슬이음문은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기에서 수당시대에 성행하였던 것으로 고대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이보다 일찍이 유행하여 일반적으로 그 기원을 서아시아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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