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 전통문양 용도별문양
청자합(7379) 청자합(7379)
청자합(7379)
문양설명
구름은 장수와 함께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 옛 사람들은 구름이란 천신이나 신령들이 타는 것일 뿐 아니라 만물을 자라게 하는 비의 근원이라 여겼다. 또 세속을 벗어나서 상서로운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서 용이나 학과 같은 상서로운 동물과 함께 나타내는 예가 많았다. 구름의 형태는 크기와 색깔이 모두 달라서 정형화된 형태가 없으며 십장생의 하나로 단독으로 쓰이지는 않았으며 다른 길상 문양과 결합하여 나타나는 예가 많다. 연판문은 연꽃의 꽃잎을 펼쳐 놓은 모양을 도안화시켜 연속무늬를 구성한 것을 말한다. 이러한 형태는 주로 도자기의 어깨부분이나 굽 혹은 저부의 둘레에 사용되었는데 이는 연꽃이 지닌 특별한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즉 도자기 등 그릇의 둘레에 연판문양이 들어감으로써 그 물건의 비범성과 청정함을 나타내어 일반의 비속한 존재와 구별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연판문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삼국 시대에 불교미술이 시작되고부터라고 할 수 있으며, 문양화된 것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서다. 범종을 비롯한 각종 불구류(佛具類)와 사리장엄구, 향로, 동경 등에서 다양한 연판의 양식이 나타나게 되었고, 그 형식은 고려시대에 와서 단조로운 선으로 표현되어 더욱 간결해진다. 연꽃은 옛날부터 생명의 창조, 번영의 상징으로 애호되었는데 그 이유는 연꽃의 강한 생명력 때문이다. 한편 불교에서는 연꽃을 청결, 순결의 상징물로 여겼는데 그것은 늪이나 연못에서 자라지만 더러운 연못에 물들지 않는 속성에 기인하고 있다. 연꽃의 이런 속성을 불교의 교리와 연결시켜 초탈(超脫), 보리(菩提), 정화(淨化) 등 관념의 상징으로 간주하였다. 또 연꽃은 환생을 상징한다. 우리 판소리 심청가에서도 심청은 인당수에 빠졌다가 큰 연꽃 속에서 환생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청자는 11세기 말에서 12세기 사이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고려청자에 본격적으로 문양이 나타나기 시작한 때는 11세기경에 이르러서이다. 문양의 종류는 중국에서 전래된 국화덩굴문과 연판문 등을 고려적인 모습으로 변화시킨 것으로 음양각기법이 이용되었다. 12세기에 접어들면서 비색(翡色) 청자의 완성과 함께 다양한 문양이 다채롭게 청자를 장식한다. 또 고려청자의 장식 기법 가운데 가장 독창적인 것이 상감기법인데, 이 기법은 조각칼로 나타내고자 하는 무늬를 음각한 후 그 홈에 붉은 흙이나 흰 흙을 감입한 것으로 문양의 표현이 사실적인 것도 있지만 도안적인 성격이 강하다. 이것은 청자 합으로 상감기법을 사용해 여러 문양들로 장식하였다. 뚜껑의 중앙에는 봉황 두 마리를 원안에 흑백상감하여 넣고 그 주변을 구슬이음무늬로 장식하였다. 다시 그 바깥으로 구름 속에 날고 있는 6마리의 봉황을 흑백상감하였다. 뚜껑의 가장자리에는 연판문을 흑백상감하였다. 뚜껑ㄱ과 그릇이 만나는 부분에는 번개무늬를 백상감하였고 그릇의 바닥에는 구슬이음무늬를 흑상감하여 돌렸다. 번개문은 지그재그 모양 또는 갈 지(之)자 모양의 무늬를 가리키는데, 이는 곧 번개를 상징하는 무늬이다. 번개는 농경사회에서 가뭄에 비를 몰고 오는 길조로 여긴다. 또 번개문은 연속되는 무늬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연속되어 끊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최대의 길상을 상징한다. 구슬이음문은 일종의 테두리 문양으로 크고 작은 구슬형태의 원무늬가 연속한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구슬이음문은 중국의 위진남북조 시기에서 수당시대에 성행하였던 것으로 고대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이보다 일찍이 유행하여 일반적으로 그 기원을 서아시아에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구슬이음문은 태양을 상징하거나 불교의 보배(佛珠) 혹은 세계와 생명을 상징한다. 봉황은 용·기린·거북과 함께 예부터 상서로운 길조가 보일 때 나타난다는 신령스러운 네 가지 짐승, 곧 사령(四靈)에 속하는 짐승이다. 봉황은 모든 새의 우두머리로 조왕(鳥王)이라 일컫는데, 수컷을 봉(鳳)이라 부르며 암컷을 황(凰)이라 부르는 상상의 새이다. 상상의 새인 봉황의 외형적 특징은 뱀의 목, 제비의 턱, 거북의 등, 물고기의 꼬리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며 단혈산(丹穴山)에 살고 있다고 한다. 봉황의 황(凰)은 황제의 황(皇)과 동음동성인데다가 봉황이 날면 뭇 새들이 그 뒤를 따른다하였기 때문에 훌륭한 임금의 위엄과 덕망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봉황은 고상하고 품위 있는 모습을 지니고 있어 왕비에 비유되기도 하며, 태평성대를 예고하는 새로 궁궐문양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이 밖에도 귀인들의 예복이나 장신구 또는 가구 공예품 등 여러 방면에 걸쳐서 사용되었다. 장수를 상징하는 구름무늬는 봉황의 신령스러움을 더해준다.
공공누리 제 1유형 마크 - 출처 표시

한국문화정보원이 창작한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예) 본 저작물은 "문화포털" 에서 서비스 되는 전통문양을 활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