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양설명
공산성은 백제시대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시대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백제가 부여로 천도하기 전까지 수도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하여 축조한 것으로, 당시의 중심 산성이었다. 원래 토성이었는데 조선 중기에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공산성 광복루는 공산성 동쪽 최고봉에 있는 누각이다. 원래는 공산성 안에 군사가 주둔했던 중군영(中軍營)의 문루(門樓)로서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의 서쪽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이곳으로 옮겨 세우고 웅심각(雄心閣)이라 불렀다. 8·15광복 이후 백범 김구(金九)와 성재 이시영(李始榮)이 이곳에 와서 이 누각을 보고, 나라를 되찾았다는 뜻을 기리고자 광복루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공산성 광복루의 망와로 드림새부분에 꽃무늬를 표현하였다. 꽃 세 송이는 6장의 꽃잎으로 단순하게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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