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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악3호분 현실 천정(73567) 크게보기 안악3호분 현실 천정(73567) 크게보기
안악3호분 현실 천정(73567)
문양설명
안악3호분은 황해도 안악군 용순면 유순리에 위치한 고구려시대의 벽화고분이다. 이 무덤은 1949년에 처음으로 발견되었고 현무암과 석회암의 큰 판석(板石)으로 제작된 돌방무덤이다. 남쪽인 앞으로부터 널길, 연실, 전실, 후실로 형성되며, 전실은 좌우에 조그만 측실이 하나씩 달려 있어 좌우 너비가 커져 있다. 전실과 후실은 4개의 팔각돌기둥으로 구분되어 서로 투시할 수 있다. 주실 즉, 뒷방은 동벽과 뒷벽의 안쪽에 판석벽과 돌기둥을 각각 세워 회랑부를 만들고 있다. 각 방의 천장은 네 귀에 각각 삼각형 돌을 얹어 천장 공간을 좁히기를 두 번 반복하고 그 위에 뚜껑돌을 얹는 모줄임천장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랜 모줄임천장이다. 벽화는 널길벽에 위병(衛兵), 앞방의 동쪽 옆방에 부엌·도살실(屠殺室)·우사(牛舍)·차고(車庫), 서쪽 옆방에 주인공 내외의 좌상(坐像), 앞방 남벽에 무악의장도(舞樂儀仗圖)와 묵서묘지(墨書墓誌), 뒷방 동벽·서벽에 각각 무악도(舞樂圖), 회랑벽에 대행렬도(大行列圖)가 그려져 있다. 결국, 벽화내용은 무악대(舞樂隊)와 장송대(葬送隊)에 둘러싸인 주실 앞에 주인 내외의 초상도(肖像圖)를 모신 혼전(魂殿)과 하인들이 있는 부엌·우사·마구고(馬具庫) 등을 두고 맨 앞은 위병이 지키는 설계이다. 이것은 왕·귀족·대관(大官)들의 생전 주택을 재현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이 무덤에서는 절대연대를 알 수 있는 명문(銘文)이 발견되었다. 이 명문에서 보이는 ‘영화십삼년(永和十三年)’은 동진(東晉)의 연호로서 서기 357년이다. 연대가 확실한 가장 오래된 고구려의 벽화고분인 안악3호분은 랴오둥지방에서 넘어온 동수의 무덤이다. 이것은 중국의 한·위진대 벽화고분의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고구려 영토 안에 세워진 최초의 중국계 벽화고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묘실평면·모줄임천장·돌기둥·벽화내용 등 여러 면에서 그 뒤 고구려 벽화고분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고구려 벽화고분의 발생과정에서 중국 벽화고분과 고구려 벽화고분을 연결하는 과도기적 존재라 할 수 있다. 안악 제3호분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동수 외에도 미천왕이나 고국원왕으로 보는 주장이 북한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동수묘를 부정하는 입장에서는 묵서 자체는 동수에 관한 것으로 인정하지만 묵서가 묘 주인공의 주변이 아닌 장하독(帳下督)의 머리 위에 있기 때문에 동수는 주인공이라기보다 묘지기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안악3호분은 동수가 장하독 생활을 한 고국원왕의 무덤이거나 또는 고국원왕의 아버지인 미천왕의 무덤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고분에 무덤 축조자의 이름을 쓴 예도 있고 주인공의 묘지 없이 무덤 세운 사람의 묘지만을 적는다는 것도 무리한 억측이기 때문에 북한학계 외에는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안악3호분 현실 천정으로 연꽃무늬를 표현하였다. 연꽃은 활짝 핀 모습으로 가운데 둥근 씨방을 중심으로 8장의 꽃잎으로 구성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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