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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대조전 계단 소맷돌(72456) 크게보기 창덕궁 대조전 계단 소맷돌(72456) 크게보기
창덕궁 대조전 계단 소맷돌(72456)
문양설명
창덕궁은 조선시대 궁궐 가운데 하나로 태종 5년(1405)에 세워졌다.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이라 불렀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불에 타자 광해군 때에 다시 짓고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가장 오랫동안 임금들이 거처하며 정궁의 역할을 하였다. 창덕궁은 임금과 신하들이 정사를 돌보던 외전과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 휴식공간인 후원으로 나누어진다. 내전의 뒤쪽으로 펼쳐지는 후원은 울창한 숲과 연못, 크고 작은 정자들이 마련되어 자연경관을 살린 점이 뛰어나다. 또한 우리나라 옛 선현들이 정원을 조성한 방법 등을 잘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으로나 건축사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1917년에는 대조전(大造殿)을 비롯한 침전에서 불이 나서 희정당(熙政堂) 등 19동의 건물이 불탔는데, 1920년에 일본은 경복궁을 헐어서 창덕궁의 건물들을 재건하였다. 창덕궁은 197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대조전(大造殿)은 창덕궁의 내전(內殿)을 겸한 침전(寢殿)으로 정면 9칸, 측면 4칸 규모의 건물이다. 대조전에서는 조선 제9대 왕인 성종을 비롯하여 인조, 효종이 죽었고, 순조의 세자로 후대에 왕으로 추존된 익종이 태어나기도 하였다. 조선 태종 5년(1405)에 건축하였으나 임진왜란 등으로 여러 차례 화재를 입어 소실되었다. 현존하는 건물은 1920년에 경복궁의 내전인 교태전(交泰殿)을 헐고 그 부재를 옮겨와 건축한 것이다. 수차례에 걸쳐 다시 지었기 때문에, 건물 자체는 물론 주변의 부속 건물들도 수많은 변화를 거쳤다. 지붕에는 용마루가 없으며 내부에는 서양식 쪽마루와 유리창, 가구 등을 구비하여 현대적인 실내장식을 갖추고 있다.
창덕궁 대조전으로 오르는 정면 계단의 소맷돌 끝부분을 호랑이 얼굴모습으로 장식하였다. 입을 좌우로 벌리고 있어 혀가 보이며 코는 납작하고 두 눈은 볼록하게 튀어나온 모습으로 나타내었다. 두 발은 턱을 받치고 나란하게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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