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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금천교 난간(72424) 크게보기 창덕궁 금천교 난간(72424) 크게보기
창덕궁 금천교 난간(72424)
문양설명
창덕궁은 조선시대 궁궐 가운데 하나로 태종 5년(1405)에 세워졌다.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이라 불렀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불에 타자 광해군 때에 다시 짓고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가장 오랫동안 임금들이 거처하며 정궁의 역할을 하였다. 창덕궁은 임금과 신하들이 정사를 돌보던 외전과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 휴식공간인 후원으로 나누어진다. 내전의 뒤쪽으로 펼쳐지는 후원은 울창한 숲과 연못, 크고 작은 정자들이 마련되어 자연경관을 살린 점이 뛰어나다. 또한 우리나라 옛 선현들이 정원을 조성한 방법 등을 잘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으로나 건축사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1917년에는 대조전(大造殿)을 비롯한 침전에서 불이 나서 희정당(熙政堂) 등 19동의 건물이 불탔는데, 1920년에 일본은 경복궁을 헐어서 창덕궁의 건물들을 재건하였다. 창덕궁은 197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금천교는 창덕궁 진선문(進善門) 밖에 있는 금천(禁川) 위에 만들어진 돌다리이다. 태종 11년(1411) 공조판서 박자청(朴子靑)의 감독 아래 조성되었다. 2개의 홍예(虹霓:무지개모양의 다리) 위에 난간이 설치되어 있고, 난간의 양쪽 끝에는 각각 다른 모양의 동물상이 새겨져 있다. 홍예와 홍예 사이에 북쪽에는 거북을, 남쪽에는 해태를 조각하였고, 그 위에 나티상을 배치하였다. 금천교는 창경궁의 옥천교(玉川橋)보다 폭이 넓고 짜임새가 세밀하며 부재의 비율이 빈틈없어 구조가 아름답고 현존하는 궁궐 안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창덕궁 금천교의 난간으로 목조건축의 기둥을 돌로 조각하여 나타내었다. 기둥의 위와 아래쪽에는 연꽃을 조각하여 표현하였다. 연꽃은 꽃잎을 오므린 형태로 서로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다. 가운데 부분에는 둥근 구슬모양을 연속하여 배치한 연주문을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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