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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함원전 난간(61162)
문양설명
경복궁(景福宮)은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태조 3년(1394)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세워졌다. 북으로 북악산에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가 펼쳐져, 수도 한양의 중심이었다. 경복궁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고종 4년(1867)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중건되었다.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의 정무시설, 왕족들의 생활공간, 휴식을 위한 후원이 위치하고 있다. 1895년 궁궐 안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왕이 러시아공관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주인을 잃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경복궁의 건물을 헐고, 근정전 앞에 총독부 청사를 지어 경복궁은 옛 모습을 거의 잃게 되었다.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사업이 추진되어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광화문을 복원하였으며, 왕과 왕비의 침전, 동궁, 건청궁, 태원전 등이 원래 모습을 되찾고 있다. 함원전(含元殿)은 정면 6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을 갖춘 건물로 교태전 옆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 세조가 불상을 봉안해 내불당으로 활용하였다. 함원전은 창건 후 몇 차례 소실되었으며 경복궁 중창 때 다시 지어졌다. 그러나 고종 13년(1876) 발생한 경복궁대화재로 내전영역과 함께 소실돼 고종 25년(1888)에 복원되었다. 일제강점기에 훼손되었으며 창덕궁으로 옮겨져 창덕궁 대조전에 덧대어진 부속 건물로 사용하였다. 함원전은 1991년~1995년까지 진행된 경복궁 복원공사 때 강녕전, 교태전 등과 함께 복원되었다. 현판은 창덕궁으로 옮겨지기 이전의 것을 수리하여 달았다.
경복궁 함원전 난간의 아자교란이다. 난간동자 사이에 살대를 아(亞)자 모양으로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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