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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자경전 도리(61069) 크게보기 경복궁 자경전 도리(61069) 크게보기
경복궁 자경전 도리(61069)
문양설명
경복궁(景福宮)은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태조 3년(1394)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세워졌다. 북으로 북악산에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가 펼쳐져, 수도 한양의 중심이었다. 경복궁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고종 4년(1867)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중건되었다.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의 정무시설, 왕족들의 생활공간, 휴식을 위한 후원이 위치하고 있다. 1895년 궁궐 안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왕이 러시아공관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주인을 잃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경복궁의 건물을 헐고, 근정전 앞에 총독부 청사를 지어 경복궁은 옛 모습을 거의 잃게 되었다.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사업이 추진되어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광화문을 복원하였으며, 왕과 왕비의 침전, 동궁, 건청궁, 태원전 등이 원래 모습을 되찾고 있다. 자경전(慈慶殿)은 경복궁에 남아 있는 유일한 대비전으로 정면 10칸, 측면 4칸의 단층건물로 팔작지붕을 갖추고 있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자미당 터에 고종의 양모인 조대비(신정익왕후)를 위해 지었으나 불에 타버려 고종 25년(1888)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경전은 대비들이 일상생활을 하고 잠을 자는 침전 건물로, 총 44칸 규모이다. 겨울에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서북쪽에 복안당이라는 침실을 두고 중앙에는 중심 건물인 자경전을 두었다. 동남쪽에는 다락집인 청연루를 두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였다. 주변에는 수십 개의 집과 담장, 문들이 있었으나 대부분 없어졌다. 지금은 장수를 기원하는 뜻을 가진 글자와 꽃·나비·대나무 문양을 흙으로 구워 새겨 넣은 아름다운 꽃담장과 동식물 무늬인 십장생을 조화 있게 새겨 넣은 굴뚝이 남아 있다.
경복궁 자경전 도리의 마구리부분에 표현한 연꽃으로 활짝 핀 모습을 나타내었다. 꽃잎은 마치 화살표와 같은 모습이며 사방으로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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