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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경회루 서까래(60837)
문양설명
경복궁(景福宮)은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태조 3년(1394)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세워졌다. 북으로 북악산에 기대어 자리 잡았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가 펼쳐져, 수도 한양의 중심이었다. 경복궁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고종 4년(1867)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중건되었다.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의 정무시설, 왕족들의 생활공간, 휴식을 위한 후원이 위치하고 있다. 1895년 궁궐 안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왕이 러시아공관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주인을 잃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경복궁의 건물을 헐고, 근정전 앞에 총독부 청사를 지어 경복궁은 옛 모습을 거의 잃게 되었다.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사업이 추진되어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광화문을 복원하였으며, 왕과 왕비의 침전, 동궁, 건청궁, 태원전 등이 원래 모습을 되찾고 있다. 경회루는 경복궁의 서쪽 연못 안에 세워진 누각으로 정면 7칸, 측면 5칸이다. 경복궁이 창건된1395년 경회루 주위에 작은 연못이 조성되었고, 태종 12년(1412) 태종의 명에 의하여 큰 방지를 파고 경회루를 창건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타서 273년간 폐허로 남아 있다가 고종 4년(1867) 흥선대원군에 의하여 재건되었다. 경회루는 이층 누각으로 팔작지붕을 갖추고 있으며 누마루를 받치는 48개의 높직한 돌기둥이 줄지어 서 있다. 연못 주변을 둘러싼 담장은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으며, 2004년~2005년에 북쪽과 동쪽 담장을 복원하였다. 경회루로 가는 3개의 돌다리에는 벽사의 의미를 가진 동물상이 새겨진 엄지기둥을 놓았다.
경복궁 경회루 서까래의 마구리부분으로 연꽃을 나타내었다. 연꽃은 활짝 핀 모습이며 겹꽃으로 꽃잎의 끝은 뾰족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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