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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홍화문 풍혈(60760) 크게보기 창경궁 홍화문 풍혈(60760) 크게보기
창경궁 홍화문 풍혈(60760)
문양설명
창경궁(昌慶宮)은 조선시대 궁궐로 태종이 거처하던 수강궁(壽康宮)터에 지어진 건물이다. 성종 14년(1483)에 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를 위해 창경궁을 건축하였다. 조선시대의 궁궐 중에서 유일하게 동쪽을 향해 지어졌다. 처음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다가 임진왜란 때에 경복궁, 창덕궁과 함께 불에 탄 이후, 창덕궁과 같이 다시 지어져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순종 즉위 후 창경궁은 일제에 의하여 크게 훼손되었다. 순종 3년(1909) 일제는 궁 안의 전각들을 헐어버리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다. 정원을 일본식으로 변모시켰으며, 한일합병이후 1911년에는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산맥을 절단하여 도로를 설치하였으며, 궁 안에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벚꽃을 심어놓았다. 창경궁은 광복 이후에도 관광시설로 이용되었다가 1980년대 정부에서 창경궁 복원 계획을 세워 1983년 7월부터 복원공사를 위하여 일반 공개를 중단하였고, 그해 12월 30일에는 원래의 명칭인 창경궁으로 환원하였다. 1984년부터 동물원과 식물원 시설 및 일본식 건물을 철거하고 문정전 등을 복원하였으며, 벚꽃나무도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으로 교체하고 한국 전통의 원림(園林)을 조성하는 등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홍화문(弘化門)은 창경궁의 정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문루이다. 성종 15년(1484)에 건립되었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광해군 8년(1616)에 재건되었다. 문 양옆으로 궁장(宮墻:궁궐을 싸고 있는 돌담)이 이어져 있고, 그 끝에 십자각(十字閣)을 두어 행각(行閣)과 연결하였으며 행각 가운데로 물이 흐를 수 있도록 수각(水閣)을 마련하였다. 물길 한복판에는 옥천교(玉川橋)를 걸쳐놓아 명정문(明政門) 쪽으로 가는 통로로 삼았다.
홍화문 풍혈로 나무판을 뚫어 기하학적인 문양을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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