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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통명전 연지 난간(60720)
문양설명
창경궁(昌慶宮)은 조선시대 궁궐로 태종이 거처하던 수강궁(壽康宮)터에 지어진 건물이다. 성종 14년(1483)에 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를 위해 창경궁을 건축하였다. 조선시대의 궁궐 중에서 유일하게 동쪽을 향해 지어졌다. 처음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다가 임진왜란 때에 경복궁, 창덕궁과 함께 불에 탄 이후, 창덕궁과 같이 다시 지어져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순종 즉위 후 창경궁은 일제에 의하여 크게 훼손되었다. 순종 3년(1909) 일제는 궁 안의 전각들을 헐어버리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다. 정원을 일본식으로 변모시켰으며, 한일합병이후 1911년에는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산맥을 절단하여 도로를 설치하였으며, 궁 안에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벚꽃을 심어놓았다. 창경궁은 광복 이후에도 관광시설로 이용되었다가 1980년대 정부에서 창경궁 복원 계획을 세워 1983년 7월부터 복원공사를 위하여 일반 공개를 중단하였고, 그해 12월 30일에는 원래의 명칭인 창경궁으로 환원하였다. 1984년부터 동물원과 식물원 시설 및 일본식 건물을 철거하고 문정전 등을 복원하였으며, 벚꽃나무도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으로 교체하고 한국 전통의 원림(園林)을 조성하는 등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통명전(通明殿)은 창경궁 안에 있는 왕의 생활공간으로 연회 장소로도 사용했던 곳이다. 조선 성종 15년(1484) 처음 지어졌던 건물로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광해군 때 재건하였으나 정조 14년(1790)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순조 34년(1834) 창경궁을 고쳐 세울 때 같이 지은 것이다.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4칸이며 팔작지붕을 갖추고 있고 지붕 위에 용마루가 없다. 통명전 서쪽에는 화강석으로 아름답게 조성한 연못인 연지가 있다. 장방형의 연못으로 벽은 장대석으로 쌓았고 둘레에 돌난간을 조각하여 돌렸다. 연지 위에는 돌다리를 동서로 설치하였다.
통명전 연지 난간의 동자석으로 연꽃봉오리를 표현하고 아래쪽으로는 연꽃의 잎사귀를 펼친 모습을 더하여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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