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양설명
창경궁(昌慶宮)은 조선시대 궁궐로 태종이 거처하던 수강궁(壽康宮)터에 지어진 건물이다. 성종 14년(1483)에 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를 위해 창경궁을 건축하였다. 조선시대의 궁궐 중에서 유일하게 동쪽을 향해 지어졌다. 처음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다가 임진왜란 때에 경복궁, 창덕궁과 함께 불에 탄 이후, 창덕궁과 같이 다시 지어져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순종 즉위 후 창경궁은 일제에 의하여 크게 훼손되었다. 순종 3년(1909) 일제는 궁 안의 전각들을 헐어버리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다. 정원을 일본식으로 변모시켰으며, 한일합병이후 1911년에는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산맥을 절단하여 도로를 설치하였으며, 궁 안에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벚꽃을 심어놓았다. 창경궁은 광복 이후에도 관광시설로 이용되었다가 1980년대 정부에서 창경궁 복원 계획을 세워 1983년 7월부터 복원공사를 위하여 일반 공개를 중단하였고, 그해 12월 30일에는 원래의 명칭인 창경궁으로 환원하였다. 1984년부터 동물원과 식물원 시설 및 일본식 건물을 철거하고 문정전 등을 복원하였으며, 벚꽃나무도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으로 교체하고 한국 전통의 원림(園林)을 조성하는 등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옥천교(玉川橋)는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弘化門)에서 명정문(明政門) 사이의 금천(禁川) 위에 가설된 돌다리이다. 길이는 9.9m, 너비 6.6m이다. 창경궁이 성종 15년(1484)에 완성되었으므로 이 다리도 그 때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옥천교는 2개의 홍예(虹霓)로 이루어져 있으며 홍예 밑부분은 흙에 묻혀 있어서 알 수 없다. 보도 상면은 중앙을 약간 높게 만들었고 난간은 양쪽에 방주(方柱)를 세우고 중간에도 방주를 세워 5칸을 형성하고 상면에 난간을 올린 형태이다.
옥천교 홍예에 덧붙인 장식물로 괴수의 얼굴을 조각하였다. 두 눈은 부릅뜨고 있으며 코은 납작한 편이다. 입은 이빨을 드러내고 있으며 갈퀴는 얼굴 뒤쪽으로 휘날리는 모습으로 나타내었다.
한국문화정보원이 창작한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예) 본 저작물은 "문화포털" 에서 서비스 되는 전통문양을 활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