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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양화당 난간(60681) 크게보기 창경궁 양화당 난간(60681) 크게보기
창경궁 양화당 난간(60681)
문양설명
창경궁(昌慶宮)은 조선시대 궁궐로 태종이 거처하던 수강궁(壽康宮)터에 지어진 건물이다. 성종 14년(1483)에 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를 위해 창경궁을 건축하였다. 조선시대의 궁궐 중에서 유일하게 동쪽을 향해 지어졌다. 처음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다가 임진왜란 때에 경복궁, 창덕궁과 함께 불에 탄 이후, 창덕궁과 같이 다시 지어져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순종 즉위 후 창경궁은 일제에 의하여 크게 훼손되었다. 순종 3년(1909) 일제는 궁 안의 전각들을 헐어버리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다. 정원을 일본식으로 변모시켰으며, 한일합병이후 1911년에는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산맥을 절단하여 도로를 설치하였으며, 궁 안에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벚꽃을 심어놓았다. 창경궁은 광복 이후에도 관광시설로 이용되었다가 1980년대 정부에서 창경궁 복원 계획을 세워 1983년 7월부터 복원공사를 위하여 일반 공개를 중단하였고, 그해 12월 30일에는 원래의 명칭인 창경궁으로 환원하였다. 1984년부터 동물원과 식물원 시설 및 일본식 건물을 철거하고 문정전 등을 복원하였으며, 벚꽃나무도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으로 교체하고 한국 전통의 원림(園林)을 조성하는 등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양화당(養和堂)은 창경궁을 창건할 때 건립한 전각으로 통명전(通明殿)의 동쪽에 있다. 명칭은 서거정(徐居正)이 지었고,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통명전(通明殿)에서 생활하던 내명부(內命婦)의 구성원들이 접대공간으로 사용한 건물로 추정된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파천하였던 인조가 환궁하면서 이곳에 거처하였으며, 고종 15년(1878) 철종의 비(妃)인 철인왕후(哲仁王后)가 승하한 곳이다. 임진왜란 때 다른 전각들과 함께 소실되어 광해군 8년(1616) 재건되었으나 이후에도 몇 차례 화재를 겪으면서 순조 34년(1834년) 재건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면 6칸, 측면 4칸의 규모로 팔작지붕을 갖추고 있다.
양화당 난간으로 문살을 더하여 장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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