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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문정전 토수(60650) 크게보기 창경궁 문정전 토수(60650) 크게보기
창경궁 문정전 토수(60650)
문양설명
창경궁(昌慶宮)은 조선시대 궁궐로 태종이 거처하던 수강궁(壽康宮)터에 지어진 건물이다. 성종 14년(1483)에 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를 위해 창경궁을 건축하였다. 조선시대의 궁궐 중에서 유일하게 동쪽을 향해 지어졌다. 처음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다가 임진왜란 때에 경복궁, 창덕궁과 함께 불에 탄 이후, 창덕궁과 같이 다시 지어져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순종 즉위 후 창경궁은 일제에 의하여 크게 훼손되었다. 순종 3년(1909) 일제는 궁 안의 전각들을 헐어버리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다. 정원을 일본식으로 변모시켰으며, 한일합병이후 1911년에는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산맥을 절단하여 도로를 설치하였으며, 궁 안에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벚꽃을 심어놓았다. 창경궁은 광복 이후에도 관광시설로 이용되었다가 1980년대 정부에서 창경궁 복원 계획을 세워 1983년 7월부터 복원공사를 위하여 일반 공개를 중단하였고, 그해 12월 30일에는 원래의 명칭인 창경궁으로 환원하였다. 1984년부터 동물원과 식물원 시설 및 일본식 건물을 철거하고 문정전 등을 복원하였으며, 벚꽃나무도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으로 교체하고 한국 전통의 원림(園林)을 조성하는 등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문정전(文政殿)은 창경궁이 창건될 때 건립되었다. 임금이 평상시 거처하던 편전(便殿)으로 사용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명전전과 함께 중건되었다. 1930년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실린 명정전(明政殿) 사진에 문정전의 동쪽 측면 일부가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때까지는 전각이 남아 있었으나 일제의 창경궁 파괴로 사라졌다. 1984년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에서 전각의 기단과 계단 등이 확인되었고 1986년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로 복원되었다.
문정전 토수로 잉어의 얼굴만을 나타내었다. 두 눈은 불룩 튀어나와 있으며 입은 굳게 다물고 있다. 수염은 아가미 쪽으로 뻗어 있으며 머리와 목부분은 비늘로 덮여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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