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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덕홍전 문(60385)
문양설명
덕수궁은 조선시대의 궁궐로서 경운궁(慶運宮)으로 불리다가, 1907년 고종이 순종에게 양위한 뒤 이곳에 살면서 덕수궁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덕수궁 자리는 원래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집이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한양으로 돌아온 선조는 월산대군의 집을 임시거처로 정하고 선조 26년(1593)부터 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경내가 협소하여 근처의 계림군(桂林君)의 집을 포함하였으며, 심의겸(沈義謙)의 집을 동궁(東宮)으로, 영상(領相) 심연원(沈連源)의 집을 종묘(宗廟)로 삼았다. 광해군은 즉위 3년(1611)에 이곳을 경운궁으로 고쳐 부르고, 1615년 창경궁으로 옮길 때까지 왕궁으로 사용하였다. 1618년 인목대비(仁穆大妃)를 경운궁에 유폐(幽閉)하였으며, 당시 경운궁은 서궁(西宮)이라 불렀다. 인조반정으로 즉위한 인조는 즉조당(卽祚堂)과 석어당(昔御堂)만을 남기고 나머지 건물들을 옛 주인에게 돌려주거나 없애버렸다. 아관파천이후 고종이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겨오면서 다시 왕궁으로 사용되었다. 1904년 화재로 대부분의 건물들이 소실되었고 1910년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石造殿) 등이 건립되었다. 또한 원래 덕수궁의 정문은 남쪽에 있던 인화문(仁化門)이었는데, 동쪽에 있던 대안문(大安門)을 수리하고 이름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쳐 정문으로 삼았다. 덕수궁은 조선시대 궁궐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으며, 개인 저택을 궁궐로 개축하였기 때문에 전각 배치도 정연하지 못하다. 석조전(石造殿)과 정관헌(靜觀軒) 등 서양식 건물이 들어서 있어서 고유한 궁궐의 양식과는 다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덕홍전(德弘殿)은 고종이 합녕전을 침전으로 사용할 때 일반 빈객을 접견하기 위하여 1906년에 건립한 후 1911년에 개조하였다. 명성황후의 빈전이 있던 경효전(景孝殿)이 있던 자리에 다시 지은 것으로 덕수궁 안에서 가장 나중에 지은 건물이라 한다. 주로 외국사신이나 대신들을 만나던 접견실로 쓰였다. 덕홍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건물로 측면에 좌우에는 툇간이 있어서 평면이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이다.
덕수궁 덕홍전 출입문으로 여러 개의 사각형을 문양으로 사용하였다. 가로로 긴 사각형과 세로로 긴 사각형을 교차하여 배치하였으며 중간에는 가로와 세로의 문살을 교차하여 여러 개의 작은 사각형을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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