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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인정전 계단(60274) 크게보기 창덕궁 인정전 계단(60274) 크게보기
창덕궁 인정전 계단(60274)
문양설명
창덕궁은 조선시대 궁궐 가운데 하나로 태종 5년(1405)에 세워졌다.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이라 불렀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불에 타자 광해군 때에 다시 짓고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기까지 가장 오랫동안 임금들이 거처하며 정궁 역할을 하였다. 임금과 신하들이 정사를 돌보던 외전과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 휴식공간인 후원으로 나누어진다. 내전의 뒤쪽으로 펼쳐지는 후원은 울창한 숲과 연못, 크고 작은 정자들이 마련되어 자연경관을 살린 점이 뛰어나다. 또한 우리나라 옛 선현들이 정원을 조성한 방법 등을 잘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으로나 건축사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1917년에는 대조전(大造殿)을 비롯한 침전에서 불이 나서 희정당(熙政堂) 등 19동의 건물이 불탔는데, 1920년에 일본은 경복궁을 헐어서 창덕궁의 건물들을 재건하였다. 창덕궁은 197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창덕궁 인정전(仁政殿)은 창덕궁의 중심 건물로 조정의 각종 의식과 외국사신 접견장소로 사용하였다. 태종 5년(1405)에 창덕궁을 세우면서 건축하였는데, 그 뒤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다. 지금 건물은 순조 4년(1804)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2층 건물이며, 2층의 높은 기단 위에 세웠다. 지붕 꼭대기에는 오얏꽃무늬로 장식하였는데, 이것은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던 무늬이다. 건물 좌우에는 복도(行閣)가 있고, 마당에는 신하들의 지위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놓여 있다. 건물 내부의 천장 가운데는 한 단을 높여 구름 사이에 있는 봉황 두 마리를 그려 넣었다. 뒷면의 높은 기둥 사이에 임금이 앉는 의자가 마련되어 있고 그 뒤에는 일월오악도 병풍이 있다. 인정전은 경복궁의 근정전, 창경궁의 명정전, 덕수궁의 중화전과 함께 조선왕조 궁궐의 정전다운 격식과 장식을 잘 갖추고 있는 건물이다.
창덕궁 인정전 계단의 동물장식으로 사자의 얼굴을 나타내었다. 사자는 입을 벌려 이빨을 드러내고 있으며 두 눈은 부릅뜨고 있다. 앞발은 모아서 턱을 괴고 있는 모습이며 갈퀴는 둥글게 말려서 머리 뒤쪽을 향하는 상태로 조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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