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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도별문양

청화백자운학문접시(19690) 청화백자운학문접시(19690)
청화백자운학문접시(19690)
문양설명
한편 『화경(花經)』에서는 “난초의 다른 한 종류로 그 잎이 난에 비해 조금 넓고 부드러우며, 꽃이 자백색(紫白色)인 것을 손(蓀)이라 한다”라 하였다. 따라서 우리 선조들은 난초 ‘손(蓀)’과 자손을 말하는 ‘손(孫)’은 같은 소리가 난다고 하여 난초를 자손번창의 상징으로도 여겨왔다. 또 공자가(孔子家)에서 전하는 말에 “착한 사람과 사귀는 것은 마치 난초를 가꾸고 있는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 오래 있으면 그 향기를 맡지 못하나 곧 그것과 동화된다”라고 하였다. 이 말의 뜻은 군자의 교제는 바로 난초를 가꾸는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비유한 것으로 예부터 사람들은 자신을 알아주는 좋은 친구를 난우(蘭友)라 하였다.
조선백자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이나 15세기경부터 푸른 코발트 안료로 문양을 나타낸 청화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7세기경부터는 주류를 이룬다. 코발트 안료의 사용은 중국 원ㆍ명대 청화백자의 영향으로 제작된 것이나 우리나라에 중국 청화백자가 들어온 시기는 고려 말로 추정된다. 1463년 이후에 세조(世祖)는 국내산 회청의 개발을 독려하여 경기도 광주 관요(官窯)를 중심으로 순백자와 청화백자가 본격적으로 제작되었다. 15세기 청화백자에는 중국 자기의 영향이 강한 문양이 그려졌으나 점차 조선적인 특징을 보여 매우 회화적인 문양이 나타났다. 중기에는 적당히 여백을 두고 간결한 필치로 그린 풀꽃문(草花文)이나 구름·용문(雲龍文) 등이 그려졌다. 후기에는 청화안료의 사용이 증가하면서 민화(民畵), 산수문(山水文), 십장생문(十長生文) 같은 사실적인 문양과 중국 청대의 청화백자의 영향을 받은 기하학적인 문양이 그려졌다. 이 청화백자 병의 몸체에는 학과 대나무가 그려져 있다. 이것은 청화백자 접시로 내면에 구름 속을 나는 학을 그렸다. 외면에는 난초무늬 3개를 같은 간격으로 배치하였다. 학은 장수와 고고함을 상징한다. 옛 문헌에도 “학은 양의 새이다. 16년에 소변(小變)하고 60년에 대변(大變)한다. 2년에는 잔털이 떨어져 검은 점으로 변하고 3년에는 머리가 붉게 변한다. 7년에 은하수를 치고 날며 또 7년에 춤을 배우고, 다시 7년에 절도를 터득한다. 밤과 낮으로 12번 울며 60년에 큰 털이 빠지고 뭇 털이 무성해진다. 깃털은 눈같이 희어서 진흙탕에도 더럽혀지지 않는다. 160년에 암수가 서로 만나 눈을 마주쳐 주시하면 잉태한다. 1600년 동안 물을 마시지만 먹이는 먹지 아니한다. 물을 먹기 때문에 부리가 길며 앞은 훤칠하고 뒤는 짧다. 땅에 깃들이기 때문에 다리가 길고 꼬리는 추레하다. 구름 위를 날기 때문에 털은 풍성하나 몸은 깡말랐다. 갈 때는 물가에 의지하며 그칠 때는 반드시 수풀에 모인다. 날개 달린 동물의 우두머리이며 선인이 타고 다닌다.”고 하였다. 조선 백자에서 학은 단독문양으로 보다는 사실적이고 회화적으로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구름은 장수와 함께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 옛 사람들은 구름이란 천신이나 신령들이 타는 것일 뿐 아니라 만물을 자라게 하는 비의 근원이라 여겼다. 또 세속을 벗어나서 상서로운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서 용이나 학과 같은 상서로운 동물과 함께 나타내는 예가 많았다. 구름의 형태는 크기와 색깔이 모두 달라서 정형화된 형태가 없으며 십장생의 하나로 단독으로 쓰이지는 않았으며 다른 길상 문양과 결합하여 나타나는 예가 많다. 난초꽃이 정신적인 완성이나 순결을 상징하는 것은 동양과 서양이 같다. 특히 난초는 동양에서 사군자에 속해 군자의 기상에 비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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