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 전통문양 용도별문양

용도별문양

청화백자연화문접시(19650) 청화백자연화문접시(19650)
청화백자연화문접시(19650)
문양설명
또한 겨울이면 말라죽는 것 같이 보이다가도 이듬해 봄이 되면 새순이 다시 나오고, 불에 탄 후에라도 속심이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온다 하여 장수(長壽)와 기사회생(起死回生)의 상징으로 여겼다. 풀꽃문은 대칭형을 이루며 간단하고 소박하게 표현되며 사실적인 문양보다는 단순화된 문양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에서 자연스러운 서민의 인식과 풍치를 발견할 수 있다. 풀꽃문은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연에 순응할 줄 아는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풀꽃문의 전성기는 조선시대 중반에 해당되며, 실용성을 위주로 하는 조선시대 공예의 이념을 잘 나타내며 간결하고 활달한 멋을 느낄 수 있다. 칠보문은 자손들에게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재앙을 물리치기를 기원하는 무늬이다. 칠보에는 복을 상징하는 전보(錢寶), 다복을 상징하는 서각보(犀角寶), 경사를 뜻하는 방승보(方勝寶), 타고난 복과 벼슬의 녹을 상징하는 화보와 서보(書寶), 장수를 상징하는 애엽보(艾葉寶), 다복을 의미하는 경보(鏡寶), 귀함을 상징하는 특경보(特磬寶)가 있다.
조선백자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이나 15세기경부터 푸른 코발트 안료로 문양을 나타낸 청화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7세기경부터는 주류를 이룬다. 코발트 안료의 사용은 중국 원ㆍ명대 청화백자의 영향으로 제작된 것이나 우리나라에 중국 청화백자가 들어온 시기는 고려 말로 추정된다. 1463년 이후에 세조(世祖)는 국내산 회청의 개발을 독려하여 경기도 광주 관요(官窯)를 중심으로 순백자와 청화백자가 본격적으로 제작되었다. 15세기 청화백자에는 중국 자기의 영향이 강한 문양이 그려졌으나 점차 조선적인 특징을 보여 매우 회화적인 문양이 나타났다. 중기에는 적당히 여백을 두고 간결한 필치로 그린 풀꽃문(草花文)이나 구름·용문(雲龍文) 등이 그려졌다. 후기에는 청화안료의 사용이 증가하면서 민화(民畵), 산수문(山水文), 십장생문(十長生文) 같은 사실적인 문양과 중국 청대의 청화백자의 영향을 받은 기하학적인 문양이 그려졌다. 이것은 민화적인 문양의 청화백자접시로 접시의 외면에는 구름무늬가 흰색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 여백은 청화로 채색되어져 있다. 접시의 내면 바닥에는 청화로 그린 연꽃이 꽂혀 있는 화병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파초가 꽂혀 있는 화병이, 오른쪽에는 풀꽃이 꽂혀 있는 화병이 배치되어 있다. 또 파초가 꽂힌 화병 옆으로는 칠보무늬가 청화로 그려졌다. 내측면에는 4잎의 도안화된 풀꽃무늬가 돌려졌다. 연꽃은 옛날부터 생명의 창조, 번영의 상징으로 애호되었는데 그 이유는 연꽃의 강한 생명력 때문이다. 실제로 천년 이상 땅에 묻혀 있던 연 씨앗을 근래에 발아시킨 예가 있을 정도이다. 『본초강목(本草綱目)』의 “연꽃은 생명력이 강하여 가히 영구적이다. 연밥은 생명의 기운을 지니고 있으며 뿌리에서 트는 싹은 끊임없이 자라나 그 조화가 쉬지 않는다”라는 말과 일치한다. 불교에서는 연꽃을 청결, 순결의 상징물로 여겼는데 그것은 늪이나 연못에서 자라지만 더러운 연못에 물들지 않는 속성에 기인하고 있다. 연꽃의 이런 속성을 불교의 교리와 연결시켜 초탈(超脫), 보리(菩提), 정화(淨化) 등 관념의 상징으로 간주하였다. 또 연꽃은 환생을 상징한다. 우리 판소리 심청가에서도 심청은 인당수에 빠졌다가 큰 연꽃 속에서 환생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연꽃은 물과 태양의 필연적인 관계를 보여준다. 연꽃과 태양신을 연관시키고 있는 것은, 태양이 동쪽에서 뜨면 동시에 연꽃잎도 피고, 서쪽으로 지면 동시에 잎도 오므라드는 것에서 착상한 것으로, 이것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과 같이 연꽃이 재생(再生)함을 상징한다. 또 씨앗 과(顆)는 품수 과(科)와 같은 뜻으로 보고 연꽃 연(蓮)은 이을 연(連) 즉 거듭됨을 뜻하여, ‘과거(科擧)에 거듭 급제할 것’을 기원하는 의미로 보기도 한다. 파초(芭蕉)는 중국 원산으로 여러 품종이 있는데 주로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며, 감초(甘蕉)라고도 한다. 파초는 신선의 풍취가 있다고 하여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공공누리 제 1유형 마크 - 출처 표시

한국문화정보원이 창작한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예) 본 저작물은 "문화포털" 에서 서비스 되는 전통문양을 활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