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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면당초문암막새(113526) 귀면당초문암막새(113526)
귀면당초문암막새(113526)
문양설명
그런 연유로 사람들은 부부가 서로 의지하고 반려가 됨을 상징하는 쌍어문양을 좋아하였다. 또 한 쌍의 물고기를 그린 그림은 경사 또는 여유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물속에서 노는 모습이 여유롭게 보이기도 하거니와 물고기의 어(魚) 발음이 여유롭다는 뜻의 여(餘) 발음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한편 『후한서(後漢書)』「이응전(李膺傳」에서는 “선비가 과거에 합격하여 임금의 얼굴을 뵈는 것을 등용문(登龍門)이라 한다”라고 적고 있다. 등용문에 관한 전설의 주된 줄거리를 보면, 해마다 봄이 되면 황하 상류의 용문(龍門)이라는 협곡에서 잉어들이 센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다투어 뛰어오르는데 그곳을 성공적으로 뛰어넘은 놈이 용으로 화한다고 하는 내용이다. 사람들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면학에 힘쓰는 선비들을 이 전설의 잉어에 비유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을 잉어가 변하여 용이 되는 것에 비유하였다. 이런 문양은 선비가 많이 쓰는 문방제품이나 기타 공예품 장식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또한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뜨고 있기 때문에 항상 그릇된 것을 경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버들은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낙엽고목으로 우리민족에게는 관조의 대상으로 또는 예술의 소재로서 풍류가 깃들인 멋과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버드나무는 여성미, 소원, 고향, 부적, 이별, 송별 등의 의미를 상징한다. 길게 늘어진 버드나무 잎은 여성의 긴 머리와 같고, 유난히 바람에 잘 흔들려 여성과의 이별의 의미를 지니는 까닭에서다. 버들문이 도자기의 문양으로 사용된 예는 극히 드문데, 모란문과 마찬가지로 고려청자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모란은 화려한 자태로 인하여 꽃 중의 왕으로 일컬어지며, 화목·부귀영화·번영을 상징한다. 송나라 유학자 주돈이는 「애련설(愛蓮說)」에서 “모란은 꽃 가운데 부귀한 자이다”고 하여 모란이 부귀를 상징함을 찬한 바 있다. 또한 모란이 주제로 등장하는 그림들 가운데 부귀장춘(富貴長春)은 오래도록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축원하는 도안이며, 장명부귀(長命富貴) 역시 생일을 축하하면서 장수와 부귀를 누리기를 기원하는 도안이다. 또한 모란과 수탉이 주제로 등장하는 공명부귀(功名富貴)는 벼슬길에 나아가 이름을 날리고 부귀를 누리기를 축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고려시대 청자에서 간결하게 도안된 모란무늬가 쓰이기 시작하여, 조선시대 분청사기를 비롯하여 청화백자·진사백자·철화백자 등에서 민화풍의 회화적인 필치로 그린 모란무늬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기와가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까지 많은 변천을 겪으면서 계속 사용되었는데, 지붕에 사용되는 위치에 따라 그 모양이나 명칭이 각각 다르고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함을 살필 수 있다. 암막새는 암키와의 한쪽 끝에 약간 위로 휜 장방형의 드림새를 덧붙여 제작한 것으로, 목조 건물의 지붕에 이어져 형성된 기왓골 끝에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도철문(귀면문)과 덩굴무늬가 시문된 암막새이다. 주연부는 대부분 마모되거나, 결실되었다. 주연분은 높게 돌출되어 있으며, 작은 구슬이음무늬를 채워 장식한 것으로 보인다. 막새 문양 면에 균일한 선으로 도철문(귀면문)을 장식하고 그 주위에 덩굴문을 빽빽하게 채워 넣었다. 귀면문은 기와의 문양으로 채택되어 삼국시대부터 귀면문수막새와 내림마루용 귀면와가 제작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서는 귀면문 수막새와 귀면문 암막새가 꾸준히 제작되는 가운데 건물의 내림마루와 귀마루 끝에 부착하는 귀면와가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주름살투성이의 얼굴에는 부릅뜬 눈과 들창코, 그리고 길게 찢어진 입에는 혀가 나와 있고 송곳니가 날카롭게 뻗쳐 있으며 이마에는 굽은 뿔이 돋아 있는 무서운 형상이다. 귀면문의 원형은 중국 고대의 도철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형상은 중국 고대 사회의 조신제(祖神祭) 가운데 지하의 망령을 달래는 원시 주술적인 진혼(鎭魂) 의례에서 시작된 것이라 한다. 망령의 모습은 몸체가 없는 얼굴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인데 은(殷) 시대의 고분에서 발견된 청동기 도철문에서 그 상징적인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도철은 눈이 크고 이빨이 튀어나온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도철은 시각이 예민하여 어떤 사악한 마귀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는 “사람을 잡아먹지만 그가 사람을 삼키기 전에 그 해가 몸에 퍼진다.”고 하였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귀면 문양의 시원을 도철문에서 찾는 사람도 있으나 우리의 귀면 문양은 우리나라 특유의 도깨비를 형상화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의 귀면문은 중국 도철문의 경우처럼 괴기스럽다거나 공포감을 자아내기보다는 해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귀면문은 지붕, 다리, 창호 등에 새겨져 벽사와 수호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덩굴은 한자 표기로 당초(唐草)라 표기하는데, 당초는 ‘당(唐)나라 풍의 덩굴무늬’를 가리킨다. 당초라고 하는 용어는 원래 겨우살이덩굴(인동초)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인동초(忍冬草)는 한국을 비롯한 중국 등지의 산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겨우살이 덩굴식물이다. 이 덩굴은 겨울을 견뎌낼 뿐만 아니라 덩굴을 이루면서 끊임없이 뻗어나가기 때문에 장수와 대(代)를 이음을 상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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