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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백자(113466) 청화백자(113466)
청화백자(113466)
문양설명
청화백자가 대칭을 이루도록 작성
조선백자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백자가 대부분이나 15세기경부터 푸른 코발트 안료로 문양을 나타낸 청화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7세기경부터는 주류를 이룬다. 코발트 안료의 사용은 중국 원ㆍ명대 청화백자의 영향으로 제작된 것이나 우리나라에 중국 청화백자가 들어온 시기는 고려 말로 추정된다. 1463년 이후에 세조(世祖)는 국내산 회청의 개발을 독려하여 경기도 광주 관요(官窯)를 중심으로 순백자와 청화백자가 본격적으로 제작되었다. 15세기 청화백자에는 중국 자기의 영향이 강한 문양이 그려졌으나 점차 조선적인 특징을 보여 매우 회화적인 문양이 나타났다. 중기에는 적당히 여백을 두고 간결한 필치로 그린 풀꽃문(草花文)이나 구름·용문(雲龍文) 등이 그려졌다. 후기에는 청화안료의 사용이 증가하면서 민화(民畵), 산수문(山水文), 십장생문(十長生文) 같은 사실적인 문양과 중국 청대의 청화백자의 영향을 받은 기하학적인 문양이 그려졌다. 이것은 청화백자 병으로 몸체에 탐스러운 모란을 줄기와 잎을 함께 그려 장식하였다. 모란은 화려한 자태로 인하여 꽃 중의 왕으로 일컬어지며, 화목·부귀영화·번영을 상징한다. 송나라 유학자 주돈이는「애련설(愛蓮說)」에서 “모란은 꽃 가운데 부귀한 자이다”고 하여 모란이 부귀를 상징함을 찬한 바 있다. 또한 모란이 주제로 등장하는 그림들 가운데 부귀장춘(富貴長春)은 오래도록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축원하는 도안이며, 장명부귀(長命富貴) 역시 생일을 축하하면서 장수와 부귀를 누리기를 기원하는 도안이다. 또한 모란과 수탉이 주제로 등장하는 공명부귀(功名富貴)는 벼슬길에 나아가 이름을 날리고 부귀를 누리기를 축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고려시대 청자에서 간결하게 도안된 모란무늬가 쓰이기 시작하여, 조선시대 분청사기를 비롯하여 청화백자·진사백자·철화백자 등에서 민화풍의 회화적인 필치로 그린 모란무늬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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