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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디자인

모란문활용그릇(2595) 크게보기
모란문 활용 그릇
활용문양
모란문
문양분류
식물문/모란문
국적/시대
한국-조선
활용 문양 정보
네모난 접시의 테두리에 작은 모란문양을 일렬로 나란하게 넣어 장식했다. 모란은 가장자리가 동글동글한 곡선으로 표현하여 귀엽고 아기자기한 느낌을 주며 꽃의 아래에 배치된 잎사귀가 자연의 생기를 더해준다. 모란은 단정하고 깔끔한 형태로 표현했지만 꽃의 특징을 잃지 않은 채 자연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어 따뜻하고 자연친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또한 예부터 아름다움과 부귀를 상징하던 모란을 생활용품에 넣어줌으로써 집안에 좋은 기운과 건강함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중국이 원산지인 모란은 낙엽관목으로 키가 2m가량이며, 꽃은 지름이 15㎝이상으로 매우 큰 편이다. 모란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전래된 시기는 삼국사기 선덕여왕조(善德女王條) ??모란화도(牧丹畵圖)와 씨앗이 진평왕(579~632)때에 당에서 왔다??는 기록에 따라 신라시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꽃잎이 중첩된 모양과 잎의 가장자리가 갈라진 형태는 매우 화려하며 꽃 중의 왕이라 불렸다. 또한 풍성한 꽃잎은 부귀를 상징하여 부귀화(富貴花)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당나라 측천무후 때 장안에는 모란이 크게 번성하였다고 하며 그 이후 모란꽃은 번영과 창성, 아름다움과 행복의 상징으로 널리 표현되었다. 모란은 회화, 자수, 공예품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표현되었는데 장미꽃과 함께 배치하여 부귀장춘(富貴長春), 수석이나 복숭아와 더불어 장명부귀(長命富貴)의 의미를 나타내었다. 고려시대에는 청자에 간결하게 도안된 모란과 덩굴을 함께 표현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분청사기를 비롯하여 청화백자 등에 모란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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