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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양특별전

김제 금산사 노주(116557) 크게보기
김제 금산사 노주(116557)
활용문양
(2D)원형문양
문양분류
식물문/연꽃문
지역
전라권
color
활용문양 정보
『금산사사적』에 의하면, 금산사는 600년대 창건되어 신라 혜공왕 2년(776)에 진표율사가 다시 고쳐 세우면서 큰 사찰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고려 전기인 935년에 후백제의 신검이 아버지인 견훤을 유폐시켰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이 노주는 금산사 대적광전에서 서남쪽에 위치한 대장각으로 가는 길의 중간에 있는데, 그 이름을 노주(露柱)라고는 하였으나 실제로 무엇으로 사용한 것인지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보기 드문 유물이다. 꼭대기에 놓인 꽃봉오리모양의 조각만 없으면 불상을 얹는 사각형의 대좌(臺座)처럼 보인다. 지대석은 사각형으로서 하나의 석재에 2단으로 조각되었는데, 아랫단의 한 변의 길이는 121㎝이며, 각 단의 높이는 아랫단이 13㎝, 위단이 9㎝이다. 하대석의 한 면의 길이는 98㎝이며, 높이는 41㎝이다. 하대석은 위의 모서리 부분을 약간 둥글게 다듬어 16변의 복련(覆蓮)을 조각하였고, 각 면의 수직 부분에는 2개의 안상(眼象)을 선각(線刻)해 놓았다. 안상 안에는 중앙 하부에 귀꽃 모양의 화형문을 조각하였다. 중대석에는 특별한 문양 없이 우주(隅柱)만을 양각해 놓았다. 한 변의 길이는 50㎝이며, 높이는 55㎝이다. 상대석의 아랫면에는 하대 정상면의 굄 수법과 같이 각형과 사분원의 몰딩을 비롯해 모두 3단의 받침이 조출되었다. 16변에는 커다란 앙련(仰蓮)이 조각되어 있는데 한 변의 길이는 94㎝이고, 높이는 37㎝이다. 이상의 각 부분은 방형이며 하나의 석재로 되어 있다. 상대석 위에 얹혀 있는 것도 하나의 석재로 되어 있다. 그 형태는 탑의 상륜부의 보륜(寶輪)과 같고 높이는 74㎝이다. 절이 창건된 때가 통일신라시대라고는 하지만, 당간지주 외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되는 것이 거의 없다. 이 노주도 받침돌에 새겨진 조각의 양식이나 각 부분의 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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