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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양특별전

고양 태고사 원증국사탑비(112260) 크게보기
고양 태고사 원증국사탑비(112260)
활용문양
(2D)원시문양
문양분류
연꽃문,거북문,구름문
지역
경인권
color
활용문양 정보
고려 말기의 고승인 원증국사 보우(1301~1382)에 대한 생애와 행적을 기록한 비이다. 비의 주인공인 원증국사는 우리에게 태고 보우라는 당호와 조계종의 중흥조로 더욱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1301년(고려 충렬왕 27) 충청남도 홍성에서 홍연의 아들로 태어나 13세인 1313년(고려 충선왕 5) 양주 회암사에서 광지선사의 제자가 되었고 25세인 1325년(고려 충숙왕 12) 승과에 급제하였지만, 승려로서의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감로사, 전단원 등에서 고행과 참선을 이어가다 1338년(고려 충숙왕 복위 7) 중흥사의 동쪽에 태고암을 짓고 머물렀으며, 이후 46세인 1346년(고려 충목왕 2) 원나라로 유학을 떠나 청공(淸珙)의 법을 이어 받고 임제종(臨濟宗)의 시조가 되었다. 귀국 후에는 공민왕의 부탁으로 왕사가 되었으나 신돈(辛旽)의 횡포를 피해 소설암, 속리사, 양산사 등에서 은거하다 1382년(고려 우왕 8) 겨울 82세에 나이로 입적하였다. 비는 원증국사가 입적한 3년 뒤인 1385년(고려 우왕 11)에 세워졌으며, 글은 고려 후기의 문신 이색(1328~1396)이 지었고 글씨는 문신이자 명필로 이름을 떨친 권주(미상~1394)가 작성하였다. 고양 태고사 원증국사탑비는 비신과 귀부로 구성된 고려후기 전형적인 탑비이며, 전체높이가 340㎝로 그 규모가 매우 큰 편이다. 한편, 비신 뒷면에 있는 음기에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1335~1408)의 당시에 관직명이 기록되어 있어 흥미롭다. 불교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연꽃은 다양한 불교 관련유물에 장식되었다. 그러나 연꽃은 세계각지에 자생하는 식물로서 불교 발생이전부터 이집트, 중국, 인도 등에서 건축물이나 미술품의 장식무늬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 연꽃문은 삼국시대 불교 유입이후로 많은 예술품과 생활도구에 표현되었다. 유교에서도 연꽃은 군자의 청빈과 고고함에 비유되었다. 도교에서는 팔선(八仙) 가운데 하나인 하선고(荷仙姑)가 가지고 다니는 신령스러운 꽃으로 받아들여졌다. 구름은 고대로부터 해, 달, 별, 바람, 비를 비롯한 자연현상을 경외시하던 사상적 배경으로 인해 신성시되었다. 만물을 소생시키는 비를 내리고 거두거나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모습 때문에 농경사회에서는 길흉을 점칠 수 있는 신령스러운 존재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또한 왕권을 상징하는 용 대신 그보다 한 단계 낮은 구름문을 사용함으로써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은 열망을 표출하는 방편으로 사용되어 높은 신분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였다. 그밖에도 구름은 장수를 상징하는 십장생 중의 하나로 불로장생을 뜻하기도 하였다. 옛 사람들은 구름이란 천신이나 신령들이 타는 것일 뿐 아니라 만물을 자라게 하는 비의 근원이라 여겼다. 또 세속을 벗어나서 상서로운 이미지를 나타내기 위해서 용이나 학과 같은 상서로운 동물과 함께 나타내는 예가 많았다. 구름의 형태는 크기와 색깔이 모두 달라서 정형화된 형태가 없다. 십장생의 하나로 단독으로 쓰이지는 않았고 다른 길상 문양과 결합하여 나타나는 예가 많았다. 구름의 형태는 머리와 꼬리로 구성되며 이 둘의 조합과 비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거북은 십장생 중 하나로 장수를 상징한다. 거북은 실재하는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역사를 통해 영험하고 신령스러운 동물로 여겨졌다. 옛사람들은 다른 도물보다 수명이 긴 생태적 속성 때문에 불상의 상징으로 인식하였다. 거북은 입에서 상서로운 기운을 내뿜고 있는 것이 많은데 이것은 신령한 동물, 상서로운 징후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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