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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별문양

비석군 비석 이수(112206) 크게보기
비석군 비석 이수(112206)
문양구분
(2D)
문양분류
식물문/연꽃문
국적/시대
한국/조선
원천유물명
비석군 비석 이수
문양설명
이 문양은 연꽃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CHR(44)|| 활짝 핀 연꽃의 꽃잎을 새겨서 표현하였다. 연꽃은 다양한 불교 관련유물에 장식되었다. ||CHR(13)||||CHR(13)||그러나 연꽃은 세계각지에 자생하는 식물로서 불교 발생이전부터 이집트||CHR(44)|| 중국||CHR(44)|| 인도 등에서 건축물이나 미술품의 장식무늬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 연꽃문은 삼국시대 불교 유입이후로 많은 예술품과 생활도구에 표현되었다. 유교에서도 연꽃은 군자의 청빈과 고고함에 비유되었다. 도교에서는 팔선(八仙) 가운데 하나인 하선고(荷仙姑)가 가지고 다니는 신령스러운 꽃으로 받아들여졌다. 연꽃문양은 비단 종교미술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연꽃은 생명의 창조와 번영의 상징이다. 연꽃을 나타낸 문양에는 종종 연꽃을 쪼고 있는 물새가 같이 나타나는데||CHR(44)|| 이는 생명의 씨앗을 획득한다는 것으로 잉태를 의미하고 또한 득남(得男)을 뜻하기도 한다. 선비들이 사용하는 물건에 연꽃과 물새가 같이 나타날 때는 과거급제를 기원하는 것이다. 즉 씨앗을 나타내는 한자어 과(顆)와 과거의 과(科)자를||CHR(44)|| 연꽃의 연(蓮)과 연달아를 의미하는 연(連)을 연결시켜서 과거에 연달아 급제한다는 뜻이다. 이외에도 연꽃과 물고기가 같이 나타나는 문양은 생활의 여유로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연꽃문은 중심무늬 외에 보조무늬로도 많이 사용하였다. 보조무늬로 사용되는 연꽃무늬는 형태가 다양하여 단순하게 한 줄로만 배열한 것||CHR(44)|| 뒤쪽의 꽃잎이 보이도록 이중으로 표현한 것||CHR(44)|| 꽃잎의 모양을 완전히 변형시켜 사각모양으로 도안한 것 등이 있다.||CHR(13)||||CHR(13)||이 문양은 국화와 잎을 표현한 것으로||CHR(44)|| 국화는 동양에서 재배하는 관상식물 가운데 역사가 가장 오래된 꽃이며 매화||CHR(44)|| 난초||CHR(44)||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의 하나로 귀하게 여겨왔다. ||CHR(13)||||CHR(13)||원산지는 중국이며 재배를 시작한 시기는 당대이전으로 추정된다. 국화는 고려 충숙왕 때 전래된 것으로 『양화소록(養花小錄)』에 기록되어 있는데||CHR(44)|| 이때 국화에 대한 중국의 문화적 인식과 관념도 그대로 전해졌다. 국화 중에 특히 황국은 신비한 영약으로 이를 달여 마시면 장수한다고 믿었으며||CHR(44)||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환갑||CHR(44)|| 진갑 등의 헌화로도 사용되었다. 국화문은 수술부분을 중심으로 작고 얇은 꽃잎이 촘촘히 붙어 있어 도안화하기에 매우 적당하다. 절지형 국화무늬는 꽃과 끝이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잎을 줄기에 연결시켜 완전한 국화로 표현하였는데 주로 11||CHR(44)|| 12세기의 상감청자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꽃부분만을 따서 도안화한 국화무늬는 13세기를 기점으로 등장하였다. 국화무늬는 중심무늬 외에도 보조무늬로 사용된 예가 많은데 이러한 형상은 도안화하기 쉬운 국화꽃의 생김새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측된다. 보조무늬로 사용된 경우에는 주로 꽃잎만을 구성하거나 꽃잎을 중심으로 작은 잎들이 조그맣게 붙어 있는 형태이다. 국화는 맑은 아취와 높은 절개를 상징하는 꽃이다. 또한 국화의 생태는 늦은 서리를 견디면서 그 청초한 모습을 잃지 않아 길상의 징조 또는 상서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국화무늬는 고려시대 도자기와 나전칠기 등에서 많이 나타난다. 국화가 핀 뜰에 참새가 날아드는 풍경은 민화 등에서 주로 그려졌다.||CHR(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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