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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상감포류문대접(3000984) 크게보기 3D 뷰어
청자상감포류문대접(3000984)
국적/시대
한국/고려
재질
도자기/청자
용도
식기
소장처
부산시립박물관
3D프린팅 가이드
추천재질 1 : 파우더(SLS/DMLS)
추천재질 2 : 플라스틱(FDM/FFF)
원천유물설명
대접은 입지름이 넓고 바닥은 입지름보다 좁은 그릇을 말한다. 청자는 고려 시대에 주로 만들어졌으며, 겉면에 푸른빛이 돈다고 하여 청자라고 불렀다. 청자는 철분이 들어 있는 백토로 자기를 만들고 철분이 들어 있는 유약을 칠해서 푸른빛이 난다. 유약의 색은 초록이 섞인 푸른색으로 비취색과 흡사하고 투명에 가까우며 태토의 색은 흐린 회색이기 때문에 청자의 색은 회색이 바탕이 된 녹청색이 되며 고려 사람들은 이를 비색이라 하였다. 청자의 태토와 유약은 청자를 만든 나라와 지방, 그것을 만든 시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고 굽는 방법도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태토와 유약의 색이 조금씩 다르다. 고려 시대의 청자는 전기, 중기, 후기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전기에는 고려 초기의 시기로 강진의 햇 무리 굽 청자 가마는 점차 확산되었으나 다른 지방의 햇 무리 굽 청자 가마는 점차 없어지거나 지방의 조질 청자 가마가 되고 녹 청자 가마도 생겨나게 된다. 중기에는 17대 인종 때부터 아름답고 세련된 독창적 기형과 독특한 비색청자를 완성하고, 18대 의종 때에는 상감기법과 문양 구성이 가장 뛰어났으며, 청자, 청자상감, 철채, 동화, 동채, 연리문, 철채 상감, 화금자기 등 다양한 청자가 만들어졌고 청자기와도 제작되었다. 후기에는 몽고 침입 이후에 원종대와 충렬왕 초까지 소수의 상품(上品)을 제외하고는 고려자기가 많이 퇴보하였으나 중기의 모습은 남아 있고 충렬왕대부터 화금과 진사설채가 다시 등장하며 새로운 기형과 문양이 생기고 청자의 질이 좋아지는 등 일시적 성황을 보이다가 다시 퇴보하는 고려 말까지를 후기로 한다. 이 청자상감포류문대접은 태토에 기포가 많고 모래가 보이며 빙렬은 없다. 시유 상태는 불량하여 입 부분은 대부분 태토가 드러난 곳이 많다. 유색은 황록색을 띠고 있다. 입 부분 안쪽 가장자리에는 간략화된 당초 문대를 돌리고 그 아래에 버들과 갈대를 서로 마주 보게 흑백 상감하였다. 중앙에는 2중의 원 안에 국화 문과 이를 둘러싼 연판문이 시문 되었다. 바깥 면에는 상하 두 줄의 백상감대 안의 2중 원안에 국화문을 등간격으로 네 곳에 배치하였다. 굽바닥과 굽 안바닥은 유약을 닦아낸 후 모래를 받쳤다. 기형의 둔화, 문양의 도식화, 모래 받침 등은 고려 후기 청자의 특징이다.
활용설명
청자상감포류문대접을 그대로 활용해 주방용품으로 개발하였다. 원형의 대접 형태, 국화 문의 표현, 굽과 바닥면의 질감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원형에 가깝게 재현하였다. 대접은 요즘에도 사용하는 식기의 일종으로 식기의 전통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일상생활에서 장식용품, 생활소품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국화는 사군자의 하나로 절개를 의미하므로 실생활에서도 그대로 실현되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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