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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의령인수명우점문 대접(3000982) 크게보기 3D 뷰어
분청의령인수명우점문 대접(3000982)
국적/시대
한국/조선
재질
도자기/분청
용도
식기
소장처
부산시립박물관
3D프린팅 가이드
추천재질 1 : 파우더(SLS/DMLS)
추천재질 2 : 플라스틱(FDM/FFF)
원천유물설명
대접은 입지름이 넓고 바닥은 입지름보다 좁은 그릇을 말한다. 분청사기는 분장회청 사기(粉粧灰靑沙器)의 준말이다. 분청사기는 청자와같이 회색 또는 회흑색의 태토 위에 백토로 표면을 바르고 그 위에 회청색의 유약을 입혀 구워낸 것이다. 분청사기가 번조된 시기는 대략 14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해당되며 조선 전기 도자기의 주류를 이루었으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우리 도공들의 납치와 요지의 파괴로 분청사기는 자취를 감추었다. 분청사기 가마터는 한강 이북지역에는 드물었지만 한강 이남 지역에는 널리 분포되어 있었다. 분청사기의 종류는 그 제작 수법에 따라 여러 가지로 구분되지만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회색 또는 회흑색의 그릇 표면에 백토만으로 분장한 것, 둘째 백토로 분장하고 그 위에 문양으로 장식한 것이 있다. 귀얄, 인화, 박지, 조화, 철화 등의 기법을 사용해서 문양을 나타냈다. 이 분청의령인수명우점문 대접은 입 부분의 일부는 수리하였으며 굽 안바닥은 번조(질그릇, 사기 등을 구워서 만들어냄)시에 생긴 균열 흔적이 있다. 태토는 잡티가 있으나 양호하다. 유약과 백토가 밀착되지 않아 떨어져 나간 곳이 있으며 유색은 회청색을 띠고 있다. 대접 전면에 귀얄로 백토를 입힌 후 인화 기법으로 처리하였다. 안쪽 면 가장자리에 당초문을 돌리고 그 아래 빗방울 문을 시문 하였다. 중앙에는 국화문, 빗방울 문과 ?의(宜)?명을 새겼다. 바깥 면은 입 부분에 당초문대를 측면에는 한 줄의 원 안에 ?인수부(人壽府)?명을 등 간격으로 시문하였다. 대마디 형태의 굽인 굽바닥에는 유약을 닦아낸 후 모래를 받쳤다. 인수부는 정종 2년에 설치된 세자부인데 설치되자마자 약 10개월간 세자부로 존속했으며 1457년 德寧府에서 다시 인수부로 복칭되어 명종 11년(1556)까지 존속하였으므로 이 대접의 제작 시기는 15∼16세기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내·외면을 빈틈없이 새긴 문양, 백토 분을 그릇 전체에 듬뿍 발라 백토 분장의 충분한 효과를 발휘한 모습 등은 15세기 중엽 경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활용설명
분청의령인수명우점문 대접을 그대로 활용해 주방용품으로 개발하였다. 원형의 대접 형태, 우점 문의 표현, 굽과 바닥면의 질감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원형에 가깝게 재현하였다. 또한, 표면에 새겨진 명문의 느낌을 자세히 표현하였다. 대접은 요즘에도 사용하는 식기의 일종으로 식기의 전통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일상생활에서 장식용품, 생활소품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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