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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제기받침(3000862) 크게보기 3D 뷰어
백자제기받침(3000862)
국적/시대
한국/조선
재질
도자기/백자
용도
의례, 제기
소장처
옛길박물관
3D프린팅 가이드
추천재질 1 : 파우더(SLS/DMLS)
추천재질 2 : 플라스틱(FDM/FFF)
원천유물설명
백자로 만든 제사용기들의 받침대다. 이런 백자로 만든 제기 용기의 받침대로 백자는 조선시대에 특히 많이 만들어진 것으로 서민들의 정신을 담고 있다. 백자는 고려 초기부터 청자와 함께 일부가 만들어졌는데 조선시대 자기의 주류를 이룬다. 규사와 산화알루미늄을 주성분으로 한 정제된 고령토에 장석질의 유약을 입혀 1300~1350℃에서 환원염 소성하여 유리질화된 순백의 반투명질 자기이다. 이와 같이 고화도로 구워낸 연질 백자는 이미 통일신라 말경부터 청자와 함께 소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의 백자는 기벽의 두께가 일정하지 않고 유약에도 미세한 빙렬이 있으며 1300℃정도의 고화도로 소성하지 않아서 무른 편이다. 11세기에는 초기 백자보다 퇴보하여 태토에 잡물이 섞이고 유약이 얇게 입혀지며 태토와 유약이 밀착되지 않아서 유약이 떨어져 나간 예가 많다. 12세기에서 13세기에는 전대보다 조금 발전을 하였으나 14세기 후반에 비로소 기벽과 유약이 두텁고 표면이 단단한 경질 백자를 제작하게 된다. 백자의 종류는 순백자, 백자 청화, 백자 철회, 백자 동화 등이며 넓게 철채나 흑유 등도 포함한다. 본 백자 제기는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백색의 제기 받침으로 담 회백색을 띠는 백자 태토에 담청색을 머금은 백자유(白磁釉)를 두껍게 발랐다. 굽바닥에는 유를 닦아내고 가는 모래 받침을 받쳐 정교하게 구운 흔적이 남아 있다. 경기도 광주 일대의 도마리, 무갑리, 우산리, 학동리 등의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경의 백자 관요(官窯)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초기 백자가 갖는 단정하고 풍만한 양감으로 시대성을 띠었으며, 위엄 있는 면을 고르게 갖춘 세련된 모양을 하고 있다.
활용설명
백자제기받침의 형태를 그대로 활용해 생활소품으로 제작하였다. 제기는 조상을 숭배하는 제례 용구로서의 신성함을 잘 담고 있다. 요즘에서 제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자기는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제사나 장례의식에 주로 사용된 제기는 신성함을 상징하며,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미적 관심과 제례에 임하는 경건한 마음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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