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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형 묘지석(3000755) 크게보기 3D 뷰어
원통형 묘지석(3000755)
국적/시대
한국/조선
재질
도자/백자
용도
의례, 상장
소장처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3D프린팅 가이드
추천재질 1 : 파우더(SLS/DMLS)
추천재질 2 : 레진(SLA/DLP)
원천유물설명
묘지(墓誌)는 죽은 사람의 이름과 태어나고 죽은 일시, 행적, 무덤의 방향 등을 적거나 새겨서 무덤 앞에 묻은 돌이나 도판(陶板)을 말하며 광지(壙誌)라고도 한다. 나중에 무덤의 형태가 바뀌더라도 누구의 묘인지 알 수 있도록 매장할 때 넣어주는 것이 보통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묘지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공주 무령왕릉(武寧王陵)에서 출토되었다. 무령왕의 능에서 나온 이 지석의 성격은 지신(地神)으로부터 묘터를 산다는 토지매매 계약서로서 매지권(買地券)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고려 시대와 조선시대의 묘에서 묘지가 발견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잘 물갈이한 장방형의 오석(烏石)이나 점판암 제의 판석을 사용하여 음각으로 글을 새긴 것이 대부분이다. 조선시대가 되면 고려 시대 이래 사용되어오던 오석이나 점판암과 더불어 자기로 만든 도판이 함께 사용되었다. 당시에 지석을 묻는 방식은 묘지의 입지에 의해 두 종류로 나뉜다. 묘지가 평지에 있으면 광중(壙中) 남쪽 가까운 곳에 먼저 오지그릇 하나를 묻고, 그 위에 지석을 놓은 다음, 또 작은 오지 그릇을 사면으로 둘러 묻어, 먼저 묻은 그릇이 덮이게 만들었다. 묘지가 가파른 산기슭에 있으면 광구(壙口) 남쪽 몇 자 되는 곳에 땅을 4, 5자 판 후, 위와 같이 하였다. 또한 벽돌을 지석으로 사용할 때는 돌상자에 넣어서 묻거나, 나무 궤에 담고 석회로 사면을 발라서 묻었다고 한다. 묘지는 그 내용이 피장자(被葬者)의 가계(家系)라든가 신분 등 개인 신상에 대한 것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당시의 사회를 아는 데 상당히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묘지는 백자도 만들고 그 위에 철화 안료로 글을 쓴 것이다. 시기는 철화백자가 유행하던 조선 17세기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기명만 백자로 만들어졌던 것이 아니고, 이러한 묘지석도 백자로 만들어졌다. 17세기의 묘지석은 대부분이 철화백자였으며, 직사각형 형태가 주를 이루었지만, 본 유물과 같이 새롭게 원통형과 접시형 묘지석도 등장하였다.
활용설명
묘지의 형태와 새겨진 글자를 그대로 재현하였다. 글자를 해석하여 피장자에 대한 정보를 해석하거나 다른 묘지와 비교를 할 때 쉽게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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