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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프린팅콘텐츠

작살(3000669) 크게보기 3D 뷰어
작살(3000669)
국적/시대
한국/신석기
재질
석(石)
용도
생업, 생활도구
소장처
경상대학교박물관
3D프린팅 가이드
추천재질 1 : 파우더(SLS/DMLS)
추천재질 2 : 플라스틱(FDM/FFF)
원천유물설명
작살은 물고기를 찔러 잡는 데 쓰는 어구의 일종이다. 공주 석장리의 구석기시대 유적에서 작살처럼 보이는 그림이 발견되었고,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는 돌과 뼈로 만든 찌르개살과 작살 끝이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이들 가운데 특이한 것은 부산 동삼동의 조개더미에서 나온 흑요석제(黑曜石製) 작살로서, 사다리꼴의 밑변을 톱니처럼 갈아 놓아서 한 번 박히면 빠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이와 비슷한 작살이 통영 상노대도(上老大島)의 조개더미에서도 나왔으며, 웅기의 서포항 유적에서는 미늘을 양쪽에 붙인 뼈로 만든 작살도 출토되었다. 청동기 시대에는 청동으로 만든 찌르개 살이나 작살을 많이 썼으며, 울산 대곡리의 반구대바위그림 가운데 고래에 작살이 꽂혀 있는 것도 보인다. 철기시대로 들어오면서 작살은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경주 안압지 출토유물 중 미늘이 달린 두 발 작살(二枝槍)과 가운데 날을 제외한 좌우 양날에 미늘을 붙인 세 발 작살(三枝槍), 날이 여섯 개나 달린 여섯 발 작살(多枝槍)이 나와서 7∼9세기에 신라에서 작살을 널리 쓴 사실을 알려 준다. 통일신라시대 당나라와의 교역 품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했던 바다표범은 모두 작살로 잡았을 것이다. 작살의 역사는 꾸준히 이어져서 조선 말기에도 큰 강가에서 세발작살로 연어를 많이 잡았으며, 오늘날에는 냇가나 못 등에서 붕어나 모래무지를 잡으며, 강원도 강릉에서는 장마철에 알을 낳기 위해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숭어도 거둔다. 충청북도에서는 작살의 발수에 따라 세가 다리, 네가 다리, 오가 다리 등으로 부른다. 가다리는 가랑이를 뜻하는 말이다. 과거에는 고래를 잡을 때 줄이 달린 작살을 손으로 던졌으나, 18세기에 이르러 이것을 쏘는 포(船首砲)가 발명되었고, 19세기 후반에는 기선에 장치하여 작살을 쏘는 포경포(捕鯨砲)가 등장하면서 고래 잡는 작살은 모두 포로 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돌고래 따위를 잡을 때에는 손으로 던지는 작살을 이용하는데, 강원도 지방에서는 돌고래뿐만 아니라 개복치도 이것으로 잡는다. 본 작살은 석핵에서 크게 한번 떼어낸 후 가장자리를 돌아가면서 아래위로 타격하여 날을 세웠다. 날을 세우기 위한 타격 중 큰 타격은 아래위에 엇갈리게 하여 그 반대쪽을 약하게 타격하여 날을 세우는 방법으로 만들었다. 기부(基部)는 중앙을 여러 번 타격하여 타원형으로 만든 다음 기부 양끝부분이 날개모양으로 튀어나오도록 만들었다. 기부의 날개상 튀어나온 부분도 만입된 부분에서 타격되어 날이 서 있는 상태이다. 윗면의 중앙에는 석핵에서 박리되기 전 먼저 박리된 박편에 의한 면이 남아있다. 등은 이 석기를 만들기 위한 타격으로 인해 생긴 박리 면으로 날을 세우기 위한 타격으로 거의 떨어져 나가고 중앙에 일부면만 남아있다.
활용설명
길이 6.2㎝의 작살을 그대로 활용해 교육, 학습용으로 제작하였다. 신석기시대의 사냥활동에서 주로 사용했을 작살을 통해서 당시 수렵활동을 이해하고 직접 사용해 보면서 신선기인들의 생활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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