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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상감국화문팔각접시(3000531) 크게보기 3D 뷰어
청자상감국화문팔각접시(3000531)
국적/시대
한국/고려
재질
도자기/청자
용도
식기
소장처
삼육대학교박물관
3D프린팅 가이드
추천재질 1 : 파우더(SLS/DMLS)
추천재질 2 : 플라스틱(FDM/FFF)
원천유물설명
청자는 고려시대에 주로 만들어졌으며, 겉면에 푸른빛이 돈다고 하여 청자라고 불렀다. 청자는 철분이 들어 있는 백토로 자기를 만들고 철분이 들어 있는 유약을 칠해서 푸른빛이 난다. 유약은 초록이 섞인 푸른색으로 비취색과 흡사하고 투명에 가까우며 태토의 색은 흐린 회색이기 때문에 청자의 색은 회색이 바탕이 된 녹청색이 되며 고려시대 사람들은 이를 비색이라 하였다. 청자의 태토와 유약은 청자를 만든 나라와 지방, 그것을 만든 시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고 굽는 방법도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태토와 유약의 색이 조금씩 다르다. 고려시대 청자는 전기, 중기, 후기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전기인 고려초기에는 강진의 햇무리굽청자가마가 널리 확산되었고 다른 지방의 햇무리굽청자가마는 점차 없어지거나 조질청자가마로 변하거나 때로는 녹청자가마가 생겨나게 된다. 중기에 들어 17대 인종 때부터 아름답고 세련된 독창적 기형과 독특한 비색청자가 완성되었다. 18대 의종 때에는 상감기법과 문양구성이 발전하였으며, 청자, 청자상감, 철채, 동화, 동채, 연리문, 철채상감, 화금자기 등 다양한 청자가 만들어졌고 청자기와도 제작되었다. 후기에는 몽고 침입 이후에 원종대와 충렬왕 초까지 소수의 상품(上品)을 제외하고는 퇴보하였으나 그런대로 중기의 모습이 남아있고 충렬왕대부터 화금과 진사설채가 다시 등장하며 새로운 기형과 문양이 등장하였다. 청자상감국화문팔각접시는 음식물을 담는 식기, 반찬과 과일 등을 올려놓을 수 있는 얕고 납작한 그릇으로 볼 수 있다. 팔각의 면을 따라서 동일한 형태의 국화를 시문하였다. 상하로 이중의 선을 두르고 국화의 사이에도 두 줄의 세로선을 더해서 공간을 구분하였다. 굽은 낮은 편이며 모래받침이 보인다. 접시의 안쪽은 아무런 문양이 없으며 약간은 탁한 청자색을 띠고 있다.
활용설명
청자상감국화문팔각접시를 그대로 활용해 주방용품으로 개발하였다. 팔각의 접시형태, 국화문의 표현, 굽과 바닥면의 질감 등을 원형에 가깝게 재현하였다. 접시는 지금도 자주 사용하고 있지만, 팔각의 형태는 드물기 때문에 색다른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 국화는 절개를 의미하는 사군자로 하나로 실생활에서도 이런 정신이 반영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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