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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프린팅콘텐츠

호패(3000384) 크게보기 3D 뷰어
호패(3000384)
국적/시대
한국/조선
재질
나무
용도
신표(信標)
소장처
옛길박물관
3D프린팅 가이드
추천재질 1 : 파우더(SLS/DMLS)
추천재질 2 : 플라스틱(FDM/FFF)
원천유물설명
호패는 조선시대 16세 이상의 남자가 차고 다닌 패로 지금의 신분증과 같은 것이다. 호패는 호구(戶口)를 명백히 하여 민정(民丁)의 수를 파악하고, 직업과 계급을 분명히 하는 한편 신분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군역과 요역의 기준을 밝혀 백성의 유동과 호적 편성의 누락이나 허위를 방지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1413년(태종 13)에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서울은 한성부, 지방은 관찰사 및 수령이 호패를 관할하였다. 이정(里正), 통수(統首), 관령(管領), 감고(監考) 등이 실제사무를 담당하였으며, 지급방법은 각자가 호패에 기재할 사항을 단자(單子)로 만들어 제출하면 2품 이상과 3사(司)의 관원은 만들어 관청에서 지급하고, 기타는 각자가 만들어 관청에서 단자와 대조한 뒤 낙인(烙印)하여 지급하였다. 『속대전』의 규정에 의하면 호패를 차지 않은 자는 제서유위율(制書有違律), 위조·도적한 자는 사형, 빌려 차는 자는 누적률(漏籍律)을 적용하고 이를 빌려준 자는 장(杖) 100대에 3년간 도형(徒刑)에 처하도록 하였으며, 본인이 죽었을 때에는 관가에 호패를 반납하였다.
활용설명
호패의 형태를 그대로 활용해 생활소품으로 제작하였다. 과거의 신분증을 통해서 현재의 신분증까지의 변천사를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일상 공간을 장식하는 소품으로 활용될 수 있다.
공공누리 제 1유형 마크 - 출처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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