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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신(3000221) 크게보기 3D 뷰어
진신(3000221)
국적/시대
한국/조선
재질
피모(皮毛)
용도
신발
소장처
가톨릭관동대학교박물관
3D프린팅 가이드
추천재질 1 : 파우더(SLS/DMLS)
추천재질 2 : 플라스틱(FDM/FFF)
원천유물설명
진신은 생가죽을 기름에 절여서 만든 신발로 유혜(油鞋), 이혜(泥鞋)라 하기도 했고 징을 박았다 하여 징신이라고 불렀다. 진신은 삼국시대 이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우중(雨中)에 신는 신발로 일반화되었는데, 1920년경부터는 값싸고 경제적인 고무신의 등장으로 진신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진신은 조선시대 양반층에서 비가 올 때나 땅이 젖었을 때 신었다. 남자신은 태사혜(太史鞋)모양이며, 여자신은 당혜(唐鞋)나 운혜(雲鞋)와 같았다. 생가죽을 들기름에 절여서 물이 스며들지 않고 오래 견디도록 여러 겹을 겹쳐서 바닥을 만든다. 신등의 가장자리도 가죽으로 백비를 쳐서 안으로 감쳤으며, 봉임법은 청올치실을 사용해 견고하게 박음질한다. 가죽은 소가죽, 말가죽, 개가죽 등을 사용하였다. 또한 밑창에 징을 박기도 하였는데, 가장자리에만 두 줄로 박은 것이 있고, 중간 부분까지 촘촘히 박은 것도 있다. 징은 지름 0.7㎝정도의 원형 돌기로 만들어 밑창의 둘레에 촘촘히 박고, 앞바닥 가운데와 뒤꿈치 중간에는 세로 1㎝, 가로 2㎝정도의 반원형이나 사분원 모양의 얇은 쇠붙이 징을 박았다. 이 징은 방침(防浸)이 잘되어 신의 수명을 길게 하고, 진흙이 달라붙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 진신은 강원도 강릉에서 출토되었으며 기름에 생가죽을 절여서 만들었다. 태사혜를 닮은 형태로 남자용으로 생각되며 바닥의 앞부분에만 징을 박았다. 바닥과 볼이 연결되는 부분은 촘촘하게 박음질 되었다. 앞코가 약간 높은 편인데 전체적으로 바닥이 높은 편이라 비가 오는 날 등에 신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활용설명
가죽으로 만든 진신의 형태를 그대로 재현해서 패션소품으로 활용하였다. 남성용 신발로 앞에만 징을 박았다. 가죽신의 질감을 그대로 재현하였으며 오늘날의 패션 아이템으로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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