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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흑상감당초문접시(3000054) 크게보기 3D 뷰어
청자흑상감당초문접시(3000054)
국적/시대
한국/조선
재질
도자기/청자
용도
식기, 접시
소장처
조선대학교박물관
3D프린팅 가이드
추천재질 1 : 파우더(SLS/DMLS)
추천재질 2 : 플라스틱(FDM/FFF)
원천유물설명
청자는 고려시대에 주로 만들어졌으며, 겉면에 푸른빛이 돈다고 하여 청자라고 불렀다. 청자는 철분이 들어 있는 백토로 자기를 만들고 철분이 들어 있는 유약을 칠해서 푸른빛이 난다. 유약의 색은 초록이 섞인 푸른색으로 비취색과 흡사하고 투명에 가까우며 태토의 색은 흐린 회색이기 때문에 청자의 색은 회색이 바탕이 된 녹청색이 되며 고려 사람들은 이를 비색이라 하였다. 청자의 태토와 유약은 청자를 만든 나라와 지방, 그것을 만든 시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고 굽는 방법도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태토와 유약의 색이 조금씩 다르다. 고려시대의 청자는 전기, 중기, 후기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전기에는 고려 초기의 시기로 강진의 햇무리굽청자가마는 점차 확산되었으나 다른 지방의 햇무리굽청자가마는 점차 없어지거나 지방의 조질청자가마가 되고 녹청자가마도 생겨나게 된다. 중기에는 17대 인종 때부터 아름답고 세련된 독창적 기형과 독특한 비색청자를 완성하고, 18대 의종 때에는 상감기법과 문양구성이 가장 뛰어났으며, 청자, 청자상감, 철채, 동화, 동채, 연리문, 철채상감, 화금자기 등 다양한 청자가 만들어졌고 청자기와도 제작되었다. 후기에는 몽고 침입 이후에 원종대와 충렬왕 초까지 소수의 상품(上品)을 제외하고는 고려자기가 많이 퇴보하였으나 중기의 모습은 남아 있고 충렬왕대부터 화금과 진사설채가 다시 등장하며 새로운 기형과 문양이 생기고 청자의 질이 좋아지는 등 일시적 성황을 보이다가 다시 퇴보하는 고려말까지를 후기로 한다. 접시는 장식에 따라 그 형태도 변형되어 화형과 방형이 등장하고 기능적인 요인에 의한 구조적인 변화로 높은 굽접시가 발달했다. 이 청자접시는 회청색의 청자흑상감당초문접시로 입술 부분은 안쪽으로 살짝 굽어진 형태를 이룬다. 안쪽의 바닥은 넓고 편평하다. 안쪽 측면의 상단과 하단에는 각각 한 줄의 음각선을 새기고 흑상감을 하였다. 그 사이로 덩굴문을 일정한 간격으로 흑상감한 모습이다. 유약을 전면에 시유하였으며 빙렬이 있다. 굽은 다리굽으로 죽절굽의 형태이며 굽접지면는 모래를 뿌려 번조하였다.
활용설명
청자흑상감당초문접시를 그대로 활용해 주방용품으로 개발하였다. 둥그런 접시형태, 덩굴문의 표현, 굽과 바닥면의 질감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원형에 가깝게 재현하였다. 접시는 지금도 자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익숙한 편안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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