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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후기

아직 최악은 오지 않았다

작성자 sta * * * * * 등록일2019-02-18
막다른 곳의 궁전
막다른 곳의 궁전
  • 작성자 평점 9.0점 / 10
  • 전체 평점 9.5점 / 10
  • 개요 연극130분만 16세 이상
  • 기간 2018-11-29~2018-12-16
  • 시간 평일 오후 8시 / 주말 오후 3시/화요일 공연 없음
  • 장소 서울나온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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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에 얽힌 세 가지 이야기, 세 명의 사람, 세 개의 독백. 포로수용소 가혹행위로 고발된 임신 8개월차 만삭의 미군, 대량살상무기는 없다는 사실을 폭로한 영국 무기전문가, 독재자에 대항한 혁명을 남몰래 준비하던 이라크 여성. 끔찍한, 정말 끔찍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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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독백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킬롤로지>가,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고민한다는 점에서 <그을린 사랑>이, 자신이 죽어야 비로소 무언가 시작되리라는 걸 맑고 깨끗한 정신으로 깨닫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에서 <태일>이.. 그밖에도 수없이 많은 텍스트들이 겹쳐진다. 주인공 세 명 모두 실존인물이며, 모두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이들이다. 가해자로서, 고발자로서, 피해자로서. 관객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입장에서, 공평하게, 모두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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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는 누가 봐도 100% 가해자인 린디 잉글랜드에게조차도 왜 '백인 쓰레기'가 되었는지 항변할 기회를 준다. 린디에 따르면 자신은 애국자이고, 가혹행위는 테러리스트를 무너뜨리기 위해 필요했으며, 자신보다 훨씬 더 심각한 가혹행위를 한 동료들이 많은데다, 주변 모두가 낄낄대며 포로들을 모욕하는 환경에서는, 누구라도 자신처럼 될 수 밖에 없을 거라고 항변한다. 자신은 '희생양'일 뿐이라고. 하지만 실은 그녀도 안다. 자신은 누가 뭐래도 가해자라는 것을. 그렇지 않으면 그 목소리- 자신과 섹스하라는 동료의 명령을 거절하는 그 차분한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울려퍼질 리 없지 않은가. "그걸 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소. 당신들 즐겁자고 내가 그러진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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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켈리의 경우는 좀 덜 직접적이고 그래서 제3자인 관객으로서는 좀 더 이해와 공감이 쉽다. 당신 지하실에서 아이가 고문을 당하고 있는데, 당신은 그걸 알고 있다면? 모두가 그런 일은 없다고 하고, 그저 짐작만 하고,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댈 때 당신은 정말로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면? 그곳에서 소녀의 손톱을 뽑고 강간을 하고 온몸의 뼈를 부러뜨리고 있다는 걸, 당신만 정확히 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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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르는 척 하는 게 더 쉽다. 모르는 척 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 일을 눈감으면 적어도 나에게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니까. 오히려 그 일을 폭로하는 순간부터 나의 모든 안정이 날아가니까. 바로 그 이유로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수없이 많은 불의가 일어나고 묻히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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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 더 이상은 그렇게 눈감고 살 수가 없어졌다. 그가 정말로 사랑했던, 그를 믿었던, 그에게 부탁했던, 그가 안심시켰던 친구의 가족들이 '우리 쪽' 미군들에 의해 강간당하고 살해당하고 불에 태워졌기 때문에. 내 주변의 누군가가 고통의 당사자로 포함되었기 때문에 (이것 역시 씁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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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데이빗 켈리의 폭로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것이, 처음부터 정부가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아무 명분 없이 타국을 침략했다는 것이 알려졌지만.. “순진한 생각”과는 달리 국가는 여전히 책임을 지지 않고 데이빗이라는 개인만이 책임을 지는 상황. 거기서 국가에 '반역'한 개인이 뭘 할 수 있을까?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그 침략의 바퀴를 늦추거나 혹은 멈출 것인가? 그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을 한다. 답을 찾은 사람이, 모두에게 내는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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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나르자스 알 사파르 얘기는.. 담담하게 진술하는 목소리와 반대로 그 내용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세상의 그 어떤 어머니도 그런 일을 겪어서는 안 된다. 세상의 그 어떤 아이도 그런 일을 겪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분명히 있었고, 지금도 일어나며, 앞으로도 어디선가 일어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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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이름을 말하면, 지금 당장 나는 살 수 있겠지만 수백수천만 명의 죄없는 목숨들이 사라진다. 그걸 알고 있는 자의 무게. 임신 8개월 만삭의 몸으로, 겨우 8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머리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무게. 몸과 마음과 영혼이 부서지면서까지 짊어진 무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그들이 너무 대단해서, 너무 위대해서, 동시에 너무 허망해서 계속 눈물이 났다.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모든 걸 내던져서 지키고자 했던 걸 끝까지 지켰으면 오죽이나 좋았겠으랴만은.. 생은 때때로 죽음보다 가혹하게 모든 것을 부서뜨려 폐허로 만들어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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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그저 먼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이라크라는 특수한 나라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류 보편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막다른 곳의 궁전'의 공포를, 우리가 모를까? 모를 수 있나? 엔카베데의 노크소리를, '남산'으로 끌려간다는 것의 의미를 아는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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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에, 세 가지 에피소드를 모두 관통하는 질문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모든 공포와 학대와 강간과 고문과 폭력과 압제 속에서, 모두가 모두를 집어삼키는 이 거대한 굴레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존엄성을 지킬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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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연극은 정답 대신 질문을 던져준다. 
"아직 최악은 오지 않았"다는 경고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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