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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루(문화후기)

연극 메피스토 잘 봤습니다.

작성자
fan * * * * * *
작성일
2014-04-14(월) 06:35
SAC CUBE 2014_연극 메피스토 MEPHISTO

SAC CUBE 2014_연극 메피스토 MEPHISTO

작성자 평점
8.0점 / 10
전체 평점
8.7점 / 10
개요
연극 150 분 중학생이상
기간
2014-04-04~2014-04-19
시간
화~금 오후 8시 / 토 오후 3시 / 일 오후 3시(월요일 공연 없음)
장소
초대이벤트에 당첨되서 덕분에 연극 한 편 잘 봤습니다.
후기가 다소 늦은 점 죄송합니다.
감사와 함께 미안함을 전합니다.
 
섬뜩한 음악을 시작으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신과 메피스토의 대화로 서막을 알린 연극은 보는 내내 간질한 냉기운을 머금은 듯했다. 잔인하고 무자비한 악마 메피스토의 일원적인 냉소와 인자와 구원의 신과의 대립적인 말의 오감은 창과 방패의 모순처럼 팽팽하게 날이 서 있었다. 파우스트 박사의 지식과 지혜를 보여주고픈 방대한 책을 형상화한 무대배경과 건조하게 한 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던 피아노 한 대, 낡은 책상과 세월의 습기를 먹은 종이 자료들의 날림이 지하실의 음습함과 더해져 쾌적하지 못한 공간 속에 비루하고 남루한 늙은 파우스트의 겉과 내면을 담아내고 있었다. 환상과 착각은 음향과 조명이 수시로 바뀌며 파우스트의 불안한 모습을 대변해 주는 듯했고, 간간히 보여주는 잔혹한 메피스토의 영상은 무대연출과 맞물려 한층 악귀의 잔인함이 더해져 보였다. 벽쪽에 달린 문에서 들리는 둔탁한 두드림과 바닥으로 서둘러 사라지는 사자들의 어둠이 환상에 쫓겨 점점 더 나약해지는 파우스트의 심리를 담아내는 것 마냥 악랄하게 느껴졌다. 개로 분하여 인간의 가장 심약하고 나약한 빈틈을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듯한 악마 메피스토는 처음 들어선 순간 마지막을 보기 전까지 절대로 돌아나올 수 없는 것처럼 누군가의 거부를 받는 것 마냥 질릴대로 질긴 집착을 보여주었다. 떨어진 끈은 다시 묶어 처음 상태로 되돌릴 수 있지만, 물질이 아닌 정신을 지배한 풀림은 영원히 매듭을 못 짓는 실과 같이 볼품 없다는 것을 나는 이 연극의 전반을 보고 그렇게 느꼈다.
탐욕과 욕망을 어떻게든 채우려던 어리석은 인간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의 잔인무도한 계획대로 영혼을 건 피의 계약을 맺는다. 이 얼마나 헛헛한 망상이고, 손쓸 수 없는 무식함인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대학자라도 본질을 탐구하고 싶다는 허울좋은 미명 아래, 순간의 어리숙함을 드러내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불편한 진실을 당연히 받아들이라는 듯 비웃는 메피스토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결국 그가 택한 것은 세속의 때가 아직 덜 묻은 순수하다고 억지춘향 격으로 맞춘 16세 소녀의 사랑이라는 것에 더더욱 어이가 없다. 물론 사랑은 그 어떤 말로도 형용못할 만큼 숭고한 것이지만, 한낱 남녀의 욕정에 사로잡혀 본질을 점점 더 망각해가는 파우스트를 보며, 그리고 그 망각을 순수와 구원의 상징인 양, 그 동안 고뇌하고 고민했던 숙제를 다 알았다는 듯이 멋대로 해답을 내리는 파우스트를 보며, 역시 원론적인 문제는 식상한 답이 정답이라는 듯한 종용에 휘둘린 것 같아 불편했다.
메피스토의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작품이지만 결국은 파우스트의 얘기였다. 좀 더 철학적이고 학문적인 접근을 원했던 내 바람과는 달리 욕망을 소재로 한 시시한 사랑타령만을 씁씁하게 남겼을 뿐이었다. 메피스토가 파우스트에게 달라 붙은 것인지, 파우스트가 메피스토를 불러 들인 것인지는 너무나 단순한 의문이었다.
결국 그 자신의 도돌이표 물음이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