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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용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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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악

장르
음악 /음악사 /한국음악
요약설명
임금이 행차할 때 수레의 앞과 뒤에서 연주하던 고취악.
상세설명
임금이 행차할 때 수레의 앞과 뒤에서 연주하던 고취악(鼓吹樂). 악기편성은 법가위장(法駕衛仗)과 연등위장(燃燈衛仗)에는 교방악관(敎坊樂官) 100인 등이 좌우로 나누어 서고, 수레 앞에는 취각군(吹角軍) 20인(연등 때는 16인), 수레 뒤에는 취라군(吹螺軍) 24인이 각기 따랐다. 팔관위장(八關衛仗)은 교방악관 100인이 좌우로 나누어 서고, 수레 앞에는 취각군 20인, 수레 뒤에는 취라군사 30인이 각각 따랐다. 노부(鹵簿)에는 금징(金鉦) 10인, 강고( 鼓). 도고 20인, 취각군사(吹角軍士) 10인 각각 좌우로 나누어 섰다. 고취에 연주되던 음악은 조선조 이전은 분명히 가려내기 어렵다. 고구려의 전정고취나 전부 고취. 후부고취는 그 악기 편성상 가락악기로 소/음악(簫)뿐인 점에서 그 음악은 단음(單音)을 유장하게 내뻗는 고대의 단순한 음악에 유(類)할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좀더 발전적인 음악이 연주되엇을 것이다. 취각군사와 취라군사의 음악은 가락이 없는 위엄을 드러내는 취악대이고, 함께 수행하던 교방악관 100인이 연주한 곡은 어떠한 것이었을지 확실하지 않다. 조선조에는 세종 말기에 창작된 여민락/음악(與民樂)을 비롯해 낙양춘/문??洛陽春). 보허자/무용(步虛子). 정읍(井邑). 정동방곡(靖東方曲).본령(本令). 해령(解令) 등이 전정고취, 전후고취, 행악의 전부고취, 후부고취 및 세악(細樂)에서 연주되었다. 지금의 대취타(大吹打)는 행렬 앞의 취고수(吹鼓手), 즉 취타수(吹打手)에 의하여 연주되었으며, 문헌상으로 조선조 중기 이후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