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묻히지 못한 영웅, 독립의 기억을 걷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나라를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자유는 단 하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름 없이, 얼굴 없이 싸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만든 결실입니다.
서울 한복판, 조용한 공원 안에 남겨진 기억의 장소, 효창공원.
이곳에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세 의사의 묘역과 함께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지금, 묻힌 역사를 다시 마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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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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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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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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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은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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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찾은 땅에 스스로의 이름을 다시 새기는 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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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광복을 기억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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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을 기념하고 있는지는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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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에 걸린 태극기는 점점 사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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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의미는 일상 속에 조금씩 묻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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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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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광복80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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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광복은 단 하루, 한 순간의 결실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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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효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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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용한 공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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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날의 이야기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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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사적 제 330호로 지정된 이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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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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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심에는 삼의사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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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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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이 직접 모셔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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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투쟁의 상징이 된 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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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 의사는 서울 용산에서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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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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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과 함께 일왕을 암살하려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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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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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사쿠라다문에서 히로히토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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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명중하지는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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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사는 일본 내 조선인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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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체포되어 같은 해 10월 10일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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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는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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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이후 농촌 계몽운동에 힘쓰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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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망명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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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서 김구 선생을 만나 한인애국단에 가입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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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4월 29일,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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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승기념식 현장에서 폭탄을 던져 주요 인사들을 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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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거사 당일 체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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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가나자와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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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기 의사는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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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후 상하이로 건너가 무정부주의자연맹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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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과 항일활동에 참여하며 일본의 주요 시설을 타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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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를 처단하는 데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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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일본 공사 아리요시를 암살하려다 실패해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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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법원에서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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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6월 5일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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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용기와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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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수많은 이름없는 독립운동가들의 노력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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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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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효창공원 자체도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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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원래 조선 왕실의 묘역, 효창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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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청일전쟁 직전 일본군이 불법 주둔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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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치와 의미는 훼손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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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일제는 이곳을 골프장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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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효창원은 역사성과 규모를 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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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효창공원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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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백범 김구 선생은 이곳에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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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위에 피어난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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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다시 기억의 장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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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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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의사 묘 옆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한 분의 자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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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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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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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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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고국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묘에 모셔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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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을 앞두고 그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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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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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독립하면 고국으로 옮겨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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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본은 그의 무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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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성지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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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는 인도 되지 않았고, 위치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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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유해는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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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사를 매일같이 청소하며 가꾸는 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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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가묘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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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분은 가묘라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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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가묘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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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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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들은 다 유해가 계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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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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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님은 가묘에요. 유해를 못 찾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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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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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찾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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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못 찾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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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아무도 모르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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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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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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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 어쨌든 간에, 어떻게 해서라도 그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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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끝에 맺힌 안타까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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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고 지낸 시간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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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우리는 나라를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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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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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의미와 희생을 잊지 않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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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공원은 오늘도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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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자유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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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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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누리는 오늘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져 있다.
- 제작
- 문화포털
- 등록일
- 2025-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