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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한옥마을,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

제작
오송민
재생시간
03:45
등록일
2020-09-25
서울 북쪽에 위치한 한옥동네라는 뜻의 북촌.
일반적으로 조선왕조 때부터 왕족, 양반, 관료 출신이 살았던 양반동네로 알고 있다.
하지만 양반동네라고 하기엔 한옥의 크기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소규모 도시한옥이 생겨났고
그 안에, 우리가 몰랐던 한옥 집단지구 건설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제목 : 북촌 한옥마을, 우리가 알지 못한 이야기들
자막.
서울 북쪽에 위치한 한옥동네라는 뜻의 북촌.
일반적으로 조선왕조 때부터 왕족, 양반, 관료 출신이 살았던 양반동네로 알려진 것과 같이
아름다운 한옥의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반동네라고 하기엔 한옥의 크기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소규모 도시한옥이 생겨났고
그 안에, 우리가 몰랐던 한옥 집단지구 건설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1910년 한일 강제 병합 이후
일제는 근대 도시 계획이라는 명분 아래 한옥을 모두 철거하고 일본식 집을 지어
경성을 식민도시로 개조하려 했습니다.
"대경성을 계획하고 대도시를 설계하는도다. 
나날이 발전하고 나날이 융성하는도다. 
그러나 그 융성하는 경성이 어찌 조선사람의 경성인가, 
조선사람은 (자본이 없기에) 집을 팔아먹고 땅을 팔아먹고 도망하되, 
일본사람은 그 반대로 사고 얻고 하여 
일일이 물밀 듯이 경성에서 발전 팽창하여 가는도다. 
이와 같이 조선인의 경성은 망하여 가고 
일본인의 경성은 흥하여 가는도다!"
1923년 3월 6일 동아일보
이 시기에 건축가 정세권 선생이라는 분이 북촌 일대의 토지를 사들여
한옥 대단지를 조성하여 조선인들에게 살 집을 저렴하게 공급하고
우리 고유의 주거 문화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독립투쟁을 했답니다.
조선시대 당시만 해도 한옥은 대형 주택이었습니다.
한옥은 고층 건물로 올리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세권 선생은 한옥 크기를 줄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리하여 큰 대지의 한옥을 철거하고 여러 채의 한옥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한옥집단지구 개발로 더 많은 조선인들이 경성에 거주할 수 있게 하였답니다.
이 같은 개발 방식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바로 이곳 한옥 관광지로 유명한 북촌 가회동 31번지 한옥집단지구입니다.
또한 정세권 선생은 한옥촌 개발로 얻은 부로독립군을 다방면으로 지원하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합니다.
데이트 코스 혹은 관광코스로만 생각했던 이 마을의 역사를 온고지신의 마음으로 느끼며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감사함을 되새겨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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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정보원이 창작한 북촌한옥마을,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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