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영상
문화포털의 크리에이터 문화PD의 영상을 소개합니다그의 마지막 거처 근처에 세워진 전시관 ‘문화공간 이육사’를 직접 방문해, 이 육사의 활동과 삶의 흔적을 따라가보았습니다.
그리고 [청포도] 시에 담긴 마음도 잠시 들여다보며, 지금 우리의 자리에서 그를 다시 기억해봅니다.
이육사가 간절히 기다렸던 손님 ‘광복’.
‘광복을 기다렸던 한 청포도를 찾아서’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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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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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종암동. 이 조용한 골목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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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인의 흔적이 고요히 숨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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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같은 의지로 시를 쓰고, 민족을 위해 싸웠던 이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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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그를 다시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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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이육사. 본명은 이원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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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조국의 자유를 꿈꾸며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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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감시망 속에서 '264번 수인번호'를
지닌 채 옥고를 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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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숫자를 자신의 이름으로 삼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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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고통과 저항의 흔적을
시 속에 남기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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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암동, 조용한 주택가 골목 안에 자리한 ‘문화공간 이육사’.
이곳은 시인 이육사의 거처 근처에 세워진 전시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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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후반, 끊임없는 투옥과 감시 속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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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는 서울 종암동에 터를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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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3, 내용
이곳은 그의 마지막 집이자,
'광야'와 '절정' 같은 대표작이 탄생한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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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3, 내용
이육사의 시는 단순한 언어가 아닌,
민족의 미래를 향한 간절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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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이육사는 1월 10일부터 대한청년동맹 간부라는 이유로 구속되었고,
1932년, 윤세주의 권유로 의열단장 김원봉이 설립 중인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1기로 입교하였습니다.
1939년, 서울 종암동 62번지로 이사하였고,
1944년, 1월 16일 베이징에서 순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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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안에는 이육사의 시를 직접 따라 써보는 공간도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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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를 한 자 한 자 눌러 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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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무언가를 간절히 전하고자 했던
이육사의 마음이 조금은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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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의 대표 시 <청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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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일제 강점기였던 1939년에 발표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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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도 ‘억압’이나 ‘식민지’라는 말 없이
강한 저항과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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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청포도는 그가 꿈꿨던 조국의 미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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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손님은 바로 ‘광복’이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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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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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을 위해 붓을 든 한 시인의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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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의 시가 다시 울리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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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시를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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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정보원이 창작한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광복을 기다렸던 한 청포도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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