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서울에 남은 유일한 향교, 양천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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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래이션> 서울시 강서구 양천로에 위치한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 8호, 양천향교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내래이션> 조선 시대 서울을 제외한 지방의 교육을 담당했던 학교, 유교 정신을 바탕으로 나라의 인재를
양성하고 선비 정신을 일깨웠던 그 중심에는 향교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방에 있을 향교가 서울에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양천향교 전교 전규승 선생님을 찾아가 조선 시대 향교와 양천향교의 역사에 대해 여쭤봤습니다.
인터뷰)
답변. 정규승/ 서울특별시 향교재단 이사장
질문1. 양천향교의 역사와 향교의 역할에 대해서
양천향교가 실제로 설치된 연간은 1411년 태종 시절에 양천향교가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전국의 향교가
대체로 이때쯤 창건이 된 거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일부 연조가 오래된 향교는 향교 창건을 고려부터 두는 때도
있지만, 양천향교의 경우에는 1411년에 창건 된 것으로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향교는 오늘날의 학제와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데 오히려 과거제도와 관련지어서 소과합격, 생원, 진사 배출을 목적으로 설치된 학교이고 소과합격생인 생원,
진사가 되면 서울에 있는 성균관에 학생으로 등록해서 공부를 더 해서 대과합격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향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간은 40세가 되기 전까지는 생도로서 등록되어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생원 진사는 오늘날의 학위로 비교해보면 희소성이나 공부 정도로 봤을 때 대체로 박사 수준이라고 비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질문2. 대성전, 명륜당, 전사청, 동재, 서재의 각각의 역할에 대해
향교는 대체로 3개의 공간으로 구분 지을 수 있는데 학생들을 가르치고 배우는 강학 공간은 ‘명륜당’과 ‘동재’,
‘서재’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명륜당은 선생님을 모시고 공부하는 강의실이고, 동재, 서재는 그 생도 중에 혹 집이
멀던가 당일 통학하기에 어려운 학생들 일부를 수용해서 기숙했던 거로 짐작이 되고요. 그리고 제향 공간은 향교에서
베풀어지는 가르침을 일으키신 성인 공자를 위시한 여러 현인의 위패를 모셔놓은 공간인데‘대성전’과 제사를 준비하는
시설인 ‘전사청’으로 되어있습니다.
질문3. 지방에 있을 향교가 서울에 있는 이유는?
사실 향교가 서울에 있다는 것 자체가 성립될 수 있는 말이 아니죠. 그렇게 된 이유는 서울시를 확장할 때 1963년 1월
1일부터 경기도였던 이 지역이 서울시로 편입되면서 향교도 서울구역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내래이션> 현대인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지고 있는 조선 시대 600년 교육의 역사 향교, 그저 옛
시대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가 지켜가야 할 진정한 교육의 본이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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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 음원 (자작곡)
그대여?날 바라보는?-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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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사용 음원
Serenity
Minstrel
Acoustic_Meditation_2
Heart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