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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 있는 무명 화가들의 등용문 ‘삼각지 화랑가’

문화포털 기자단 2017-02-10
실력 있는 무명 화가들의 등용문 ‘삼각지 화랑가’


화려하게 치장된 서울 화랑가들 속에서 유독 순박하고 소소한 행복이 느껴지는 화랑가가 있습니다. 바로 1960년대 국민 가수 배호가 부른 노래 ‘돌아가는 삼각지’ 의 본 고향이자 서울의 오랜 미식가들에게 사랑받는 먹자골목인 대구탕 골목이 있는 삼각지인데요. 이곳은 인사동, 청담동처럼 고급 화랑가는 아니지만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그림을 생산해내기 때문에 친근함과 동시에 시대의 향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삼각지 화랑가로 찾아오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지하철 4, 6호선 삼각지역, 1,2번 출구를 빠져나와 단층짜리 은행 건물을 돌아서면 1960년대식 복층 건물이 늘어서 있고 그 뒷골목을 배경으로 긴 미술거리가 펼쳐지는데요. 낡은 간판이 인상적인 표구점이며, 오래된 이발관은 이곳이 오랜 역사를 간직한 화랑가 임을 짐작케 합니다.


(왼쪽부터) 돌아가는 삼각지 가수 배호 동상 / 4호선 지하철 대합실에 전시된 그림들 ⓒ 문화포털 기자 김현진

(왼쪽부터) ‘돌아가는 삼각지’ 가수 배호 동상 / 4호선 지하철 대합실에 전시된 그림들 ⓒ 문화포털 기자 김현진


지하철 대합실에서도 삼각지 화랑가 작가들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와 함께 의자에 앉아 기타를 치고 있는 배호의 동상도 볼 수 있는데요. 처음 방문해도 낯설지 않은 풍경에 따스한 감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투박하지만 정겨운 정이 있는 삼각지 화랑가 ⓒ 문화포털 기자 김현진

(왼쪽부터) 투박하지만 정겨운 정이 있는 삼각지 화랑가 ⓒ 문화포털 기자 김현진


삼각지 화랑가는 6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용산 미군부대 이전과 지역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40여개의 화랑과 100명이 안 되는 화가만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지만 이들의 작품은 60년대 미국에 수출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때 지방 화랑들이 그림을 사러 트럭을 대기도 했을 만큼 양적으로 질적으로 영향력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중국, 베트남 그림이 수출을 대체하고 경기 불황에 내수 판매마저 줄어 예전만한 화려함은 찾을 수 없지만 변함없는 사실은 저렴한 작품 거래값으로 서민들의 고된 삶을 위로해 주는 작품들이라는 점입니다.


(왼쪽부터) 정감있는 터치들로 완성된 따스한 그림 / 캔버스 크기로 출력된 세계명화 ⓒ 문화포털 기자 김현진

(왼쪽부터) 정감있는 터치들로 완성된 따스한 그림 / 캔버스 크기로 출력된 세계명화 ⓒ 문화포털 기자 김현진


실제로 필자가 화랑을 방문해 작품을 감상해 보니 따스한 색채들과 풍경들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터치들이 그 동안 그들이 걸어오며 고민했던 흔적들을 대변하는 듯 했는데요. 제작 원가를 낮추기 위해 값싼 안료를 사용해 작품을 그려왔다는 한 작가의 말에선 어려웠던 시절, 미술에 대한 열정을 더욱 키워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삼각지 화랑가 곳곳에 붙어 있는 인물 드로잉 수업 포스터 ⓒ 문화포털 기자 김현진

삼각지 화랑가 곳곳에 붙어 있는 인물 드로잉 수업 포스터 ⓒ 문화포털 기자 김현진


삼각지 화랑가 역사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국 전쟁이 끝난 후 용산에 주둔하기 시작한 미군을 따라 그들에게 초상화나 풍경화를 그려주던 화가들이 이곳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것인데요. 임대료가 저렴해 전쟁 전후 피폐한 환경 속에서 재능은 있으나 제도적 교육을 받지 못한 가난한 화가들이 이곳에서 기량을 갈고 닦았다고 합니다. 이중섭, 박수근 화백도 이곳을 거쳐 갔는데요. 이들의 작품은 70년대 후반까지 해외로 활발히 수출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삼각지 미술이 한국인의 일상생활 속에 파고들어 있음을 말해 줍니다.


특히 중년 이상 세대들에게 ‘소위’ 이발소 그림(삼각지그림)이라 불리던 아크릴 풍경화는 한 시대를 대변하는 추억의 소품으로 꼽힙니다. 그만큼 대중적이었다는 의미일 텐데요. 삼각지 작품은 서구 명화와 대중적 정서를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제도권 미술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민중과 대중의 시선, 일상의 맥락에서 미술을 고민한 작가들의 정서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습니다.


(왼쪽부터) 다양한 크기로 제작이 가능한 액자 전문점 ⓒ 문화포털 기자 김현진

(왼쪽부터) 다양한 크기로 제작이 가능한 액자 전문점 ⓒ 문화포털 기자 김현진


삼각지 그림은 초기에 주로 미군들의 초상화가 주를 이룹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잡지 묘사화, 명화 모 작품, 풍경화, 정물화, 낙화, 혁필화로 영역을 넓혀져 가기 시작하는데요. 그 영향으로 자연스레 표구점이나 액자 전문점이 모여들게 되었고 그렇게 형성된 화랑가는 지금까지 명맥이 이어져 삼각지 화랑가, 삼각지 미술이라는 용어가 탄생케 됩니다.


세계명화 뿐 아니라 다양한 미술품 제작이 가능한 삼각지 화랑가 ⓒ 문화포털 기자 김현진

세계명화 뿐 아니라 다양한 미술품 제작이 가능한 삼각지 화랑가 ⓒ 문화포털 기자 김현진


그러나 면면히 역사가 이어오기 까지 삼각지 화랑가는 미술계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무명 화가들이 저렴한 그림을 그려내다 보니 삼각지 그림을 싸구려 그림으로 폄훼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이들이야 말로 학벌, 인맥이 아닌 순수한 재능만으로 살아남은 화가들입니다. 그림의 미적 가치와 의미를 끊임없이 찾아보고 연구하기 때문이죠. 


삼각지 화랑가에서 만난 한 화가는 필자에게 “이곳이 가난한 화가들의 작업장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보단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 언덕 화가처럼 자부심을 느끼며 즐겁게 그림을 작업하는 화가들로 기억되길 바란다”며 소박한 바람을 말씀 하셨습니다. 덧붙여 앞으론 한국적 소재와 이미지를 독특한 방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제작해 전시를 열 예정이라 귀띔해 주셨는데요.


이번 주 주말, 이들의 소박한 바람과 정감어린 시선으로 제작한 화가들의 따듯한 작품을 감상하러 삼각지로 데이트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삼각지 미술의 순수함이 현대의 속도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진짜’의 것을 돌아보게 할 것입니다.


* 삼각지 화랑가 정보

- 찾아가는 법 : 지하철 4, 6호선 삼각지역 1, 2번 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