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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시작, 입추와 처서

문화포털 기자단 2015-08-10
가을의 시작, 입추와 처서

가을의 시작, 입추와 처서
 
 
학창 시절,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우리나라의 장점 중 하나는 바로 사계절의 구분이 명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이야 이상기온 현상으로 인해 봄에 한파가 찾아오거나 가을까지 무더운 날이 계속되는 등 계절에 구애받지 않는 날씨가 되었지만, 어쨌거나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계절을 4개로 분류해 왔습니다. 바로 24절기를 기준으로 말이죠.

 
 
● 24절기

24절기는 중국 주나라에서 유래된 개념으로 당시 화북 지방의 기상 상태를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천문학적으로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도는 길인 황도(黃道)를 따라 15도씩 이동할 때마다 나타나는 기상 변화를 24개로 구분한 것이기도 합니다. 



태양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24절기 ⓒ 문화포털 기자단 배승진

 
그렇게 구분된 24절기 중 입춘에서 곡우 사이를 봄, 입하에서 대서 사이를 여름, 입추에서 상강 사이를 가을, 입동에서 대한 사이를 겨울로 구분하여 사계절의 기준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절기마다 예상되는 일조량, 강수량, 기온 등을 활용하여 농사를 짓는 데 사용하고 절기의 이름에 그것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24절기의 의미와 시기 ⓒ 문화포털 기자단 배승진
 

 
● 가을의 시작, 입추
 
아직은 한여름이라고 할 수 있는 8월 초이지만 이 시기에는 24절기 중 13번째인 ‘가을의 시작’ 입추가 있습니다. 입추는 가을의 입구에 들어섰다는 뜻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직접 체감하는 날씨는 한여름에 더 가깝습니다. 실제로도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평균기온이 가장 높은 절기는 여름 더위의 절정이라는 대서(25.2도)가 아니라 입추(25.8도)였다고 합니다. 물론 최고기온 평균은 그 이름값대로 대서(29.2도)에서 가장 높게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입추임에도 덥다는 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는데 사실 입추를 포함하여 입춘, 입하, 입동은 ‘입(立)절기’에는 그 계절 날씨를 바로 느낄 수 없고, 계절이 교차하는 ‘교(交)절기’가 되어서야 본래 계절의 날씨를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교절기를 지나 ‘극(極)절기’가 되면 그 계절의 절정에 이르게 된다고 합니다.
 

 


입절기부터 극절기까지 이르는 절기의 변화 ⓒ 문화포털 기자단 배승진

 
 
한편, 입추는 예부터 농사를 지었던 우리 민족에게는 매우 중요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 무렵이 벼가 한창 여무는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농민들은 쾌청한 날씨를 기원했고, 조선 시대에는 입추 무렵 비가 닷새 이상 계속되면 날이 맑기를 기도하는 ‘기청제(祈晴祭)’를 올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입추 무렵의 날씨는 1년 농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였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이 시기 날씨로 점을 치기도 했습니다. 날씨 점은 그 중요성에 걸맞게 농민들의 재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입추 무렵 하늘이 맑으면 만곡(萬穀)이 풍년이라 여기고, 비가 조금만 내리면 길하고 많이 내리면 벼가 상한다고 여겼습니다. 또한, 천둥이 치면 벼의 수확량이 적고 지진이 있으면 다음 해 봄에 소와 염소가 죽는다고 점치기도 했습니다. 

입추 무렵은 1년 농사를 결정짓는 시기이기도 했지만, 1년 식량을 결정짓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듬해까지 먹을 김장용 무와 배추를 심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비로소 입추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가을 준비를 하는 시기이지만 이 시기는 농민들에게는 조금 여유로운 시기였기 때문에 이 준비를 비교적 수월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김매기도 끝난 이 시기는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7월은 어정거리다가 지나가고 8월은 건들거리다가 지나가는 시기, 즉 농한기였기 때문입니다.
 

 
● 진정한 가을의 시작, 처서
 
가을의 매력에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중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선선한 날씨가 아닐까 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날씨가 이어지면 비로소 가을이 왔음을 실감할 수 있고, 무더위에 하지 못했던 여행이나 야외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서는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가을의 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처럼 교절기인 처서가 되면 모기도 힘을 잃는 가을 날씨가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관점으로는 하루빨리 선선한 날씨가 되는 것이 좋겠지만, 옛 우리 조상들에게 무작정 선선하기만 한 날씨는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입추와 마찬가지로 생업인 농사 때문이었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입추의 날씨가 벼가 여무는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면, 처서 무렵의 날씨는 벼의 성숙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강렬한 햇빛을 받아야 벼가 마지막 성장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선선한 바람이 불더라도 햇빛은 강렬해야 했고, 특히나 입추와 마찬가지로 비는 오지 말아야 했습니다. 비가 오면 나락에 빗물이 들어가 벼가 제대로 자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줄어든다’는 속담이 나올 정도였으니, 처서에 오는 ‘처서비’가 한해 농사와 생존을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직은 한창인 여름 날씨를 즐기는 아이들 ⓒ 문화포털 기자단 배승진

 
60년 만의 불볕더위, 40년 만의 폭우 등은 어떻게 매년 생기는 것일까 생각이 들 정도로 기후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계속되는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겨울이 사라질 것으로 추측하는 과학자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과거의 날씨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입추와 처서를 비롯한 24절기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24절기란 단순히 달력에 표시되는 날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져온 우리의 유산입니다. 당장 오늘의 날씨도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서 경험으로 체득하고 과학으로 검증한 자료이자 중요한 역사인 것입니다. 따라서 입추와 처서가 지나도 가을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이날들을 부정하고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릴 것이 아니라, 이 무렵의 비가 옛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고 이름에 담긴 뜻은 무엇인지 손자들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그런 콘텐츠가 되었으면 합니다.
 

* 참고 자료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입추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처서
 
네이버 지식백과 - 입추
 
네이버 지식백과 - 24절기
 
진미정, 박선엽,「우리나라 기후 절기별 기온 변화의 시공간적 특성 분석」,「대한지리학회지」, 50권, 제1호, 2015년

 
- 작성자 : 문화포털 기자단 배승진(글) / 장수영(편집)